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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인7-8. 송익필(宋翼弼)과 정철(鄭澈)

  • 등록 2023.11.03 02: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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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인7. 송익필  
 
山行 (산행) / 宋翼弼 (송익필)  
 
산행 중에는 앉는 것을 잊고 앉으면 가는 것도 잊고
말을 소나무 그늘 아래 쉬게 하고 물소리를 듣네
내 뒤에 오던 몇 사람이나 나를 앞서가는가
각자 그리 그칠 데로 돌아가는데 또 무엇을 다투리  
 
송사련은 좌의정 안당이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안씨 일가를 멸문시키고 재산과 노비를 차지했다. 정3품 절충장군 등을 역임하며 30년 동안 권세를 누렸다. 신사무옥이 무고로 밝혀지자 관직이 삭탈됐고 서얼로 환천됐다.  
 
송익필은 송사련의 서자로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송사련의 무고죄 때문에 독학으로 성리학을 수학했다. 25세에 초시에 합격했으나 ‘얼손(孼孫)이 과거시험을 봤다’ 라는 상소를 받아 합격 자격이 박탈됐고 서얼로 환천됐다.  
 
송익필은 벼슬을 단념하고 고양 구봉산에서 은거하며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단념하며 이이 성혼 정철 조헌 등과 교우했다. 해동 18현인 김장생, 문묘와 종묘에 종사 된 김집, 인조반정 공신인 김유, 정철의 아들인 정홍명 등을 양성했다.  
 
송익필은 서인에 속했고 문장에 능해 이율곡, 최립, 하응림, 최경창, 이달, 백광훈, 이산해 등과 함께 8문장가로 꼽혔다. 송익필은 정여립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을 하여 2,000여 명이 희생된 기축옥사를 막후에서 조정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송익필은 탄핵받아 평안도 회천으로 유배됐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면을 받았으나 문인의 집을 전전하다가 객사했다. 사헌부 지평에 추증됐고 홍문관 제학에 가증됐다. 논산 휴정서원에 배향됐고 인조반정이 이후 양민으로 환원됐다.  

 

 

조선의 시인8. 정철 
 
근악(槿樂) / 정철(鄭澈) 
 
옥이 옥이라 하거늘
번옥(燔玉)으로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이 분명하다
내게 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  
 
철(鐵)이 철(鐵)이라 하거늘 / 진옥(眞玉) 
 
잡철(雜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이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한번 녹여볼까 하노라  
 
송강 정철이 함경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기생 진옥을 만나 정철의 살송곳과 진옥 골풀무를 주제로 희롱을 주고받은 시조이다. 그날 밤 뚫었는지 녹였는지 철과 옥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정철(鄭澈)은 아버지는 종5품 돈령부판관 정유침이고 어머니는 정3품 대사간 안팽수의 딸이다. 맏누이가 인종의 후궁인 귀인(貴人)이고 둘째 누이가 월산대군의 손자인 계림군(桂林君)의 부인이다.  
 
정철은 어려서부터 궁궐을 다니면서 중종의 아들인 경원대군과 친하게 지냈다.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자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매형 계림군이 을사사화 당시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정철의 아버지 정유침은 함경도 정평으로, 맏형은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됐다. 정유침은 해배 되어 다시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경상도 영일로, 맏형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어 귀양길에 사망했다.  
 
정유침은 순회세자 탄생 기념으로 정유침이 특별 사면되어 전라도 창평으로 이주했다. 정철은 송강(松江)이라 아호를 짓고 김윤제의 문하생이 되어 임억령, 김성원, 송순,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등과 교우했다.  
 
정철은 27세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선조가 즉위하여 서인과 동인이 분화되자 서인에 가담했다. 동인의 공격을 받아 전라도 담양으로 낙향하여 성산별곡을 지었다.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되어 관동별곡을 지었다.  
 
정철은 예조판서에 이어 형조판서에 특진됐으나 사간원 및 사헌부 탄핵으로 4년 동안 고향에서 은둔하여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지었다.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발생하자 우의정으로 특배되어 위관 자격으로 기축옥사를 일으켜서 동인 1,000여 명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정철은 왕세자 책봉을 두고 선조의 미움을 받아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되어 위리안치에 처해졌다. 임진왜란으로 해배되어 선조를 의주(義州)까지 호종했다. 전란 중에 강화도에서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 이라 하였다. 정철은 시인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정치가로 최악의 오명만 남아있다.
 

박형수 기자 daeshin23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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