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몽(崔知夢, 907년~987년)은 전남 영암 구림 출신으로 63년간 여섯 임금을 섬긴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본명은 최총진(崔聰進)이며 해상무역을 통해 유력한 토착세력으로 성장한 최상흔(崔相昕)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상흔은 태조 왕건의 나주 정벌에 협력했고 아들 최지몽은 고려가 건국하자 벼슬을 얻었다.
최지몽은 불교경전 무량수경을 주석한 현일(玄一) 스님에게 경서와 사서를 익혔고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했고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삼한을 통일하고 다스릴 길몽이라고 꿈을 해몽하여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3년간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등 여섯 임금을 섬겨>
최지몽은 태조 왕건을 도와 새로운 왕조 ‘고려’를 개창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최지몽은 또 하늘의 별을 보고 “곧 변란이 있을 것이니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조언해 왕족 왕규(王規)가 일으킨 2대 임금 ‘혜종’ 시해 음모를 막아냈다. 혜종은 나주 출신 정화왕후 오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건의 장남이다.
3대 임금 ‘정종’이 즉위하여 왕규(王規)를 처형하고 최지몽의 공로를 포상했다. 그러나,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신진세력을 등용하고 구신세력 숙청정책을 펼친 4대 임금 ‘광종’은 술에 취해 무례를 범했다는 구실로 최지몽을 11년 동안 유배를 보냈다.
최지몽은 5대 임금 경종이 즉위하자 종1품 내의령으로 복귀하여 왕승(王承)의 역모를 적발하여 왕권강화에 기여했다. 또, 최지몽은 6대 임금 ‘성종’이 즉위한 후 정1품 수내사령으로 승진했다. 최지몽이 81세로 별세한 후, 민휴(敏休)라는 시호를 받고 최고 관직인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된다. 고려의 신하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린 인물이었다.
<영암 구림마을, 백제 초 왕인박사, 신라 말 도선국사, 고려 초 최지몽 등 배출>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남쪽 고을에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오르지 않고 이 산에서 오르더라”며 월출산(月出山)을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극찬했다.
월출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구림마을은 2,200년의 선사 주거지, 1,200년의 도기 가마터, 450년의 구림대동계, 그리고 3·1 독립운동의 기치를 올렸던 곳이다. 구림마을에서 일본의 아스카(飛鳥時代) 문화를 연 왕인 박사,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시조로 불리는 도선국사, 고려의 개국공신인 최지몽 등이 탄생했다.
1972년 왕인 박사 탄생과 도선국사 전설이 남아있는 월출산 자락에 국암사(國巖祠)가 세워져 고려의 개국공신 최지몽을 향사했다. 국암사에는 최지몽을 주벽으로, 고려가 멸망하자 낙향하여 은둔한 최안우, 구림대동계에 참여했던 최진하, 종2품 공조참판을 역임했던 최몽안 등을 함께 배향했다. 구림마을은 이렇듯 유서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