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고구려-수나라 전쟁

2024.01.31 14:52:56

 

 

을지문덕   


을지문덕(乙支文德)은 평양 출신으로 고구려의 무장이자 대신(大臣)이다. 수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고 출병했다. 수문제는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우중문(于仲文)을 별동대로 조직하여 평양성으로 진군했다.
 
을지문덕은 혈혈단신 수나라군 진영에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고 적진을 파악한 후에 돌아왔다.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붙잡으려 정예기병으로 추격했으나 붙잡지 못하였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을 희롱하는 오언사구(五言四句)의 한시인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보냈다.
 
신통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神策究天文)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겨서 쌓은 공적이 높으니(戰勝功旣高)
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면 어떠하랴(知足願云止)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유인작전과 청야전술로 사기가 떨어졌고, 고구려의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철군하던 중에 살수에서 습격을 받아 참패를 당했다. 우중문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투옥 되었으며, 석방된 후 홧병으로 69세에 사망했다.  
 
살수대첩(薩水大捷)은 2차 고구려-수 전쟁 중에 수나라 별동대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의 습격을 받아 궤멸된 전투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2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나라 수군대장 내호아는 고건무에게 패배했고, 수나라 별동대는 평양성을 공격할 때는 30만 명이었으나 살수에서 대패하여 압록강을 건너간 병사는 겨우 2,700명으로 고구려의 대승으로 종전됐다.  

 

 

고구려-수나라 전쟁 


양견(楊堅)은 선비족 출신으로 북주(北周) 3대 황제 우문옹에게 수주(隨州) 자사의 벼슬을 받았다. 큰딸 여화를 황태자 우문윤에게 시집보내 표기대장군이 되었다. 사위 우문윤이 4대 황제로 즉위하자 실세가 되었다.  
 
양견은 외손자인 우문연이 5대 황제로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고 수왕(隋王)에 책봉됐다. 양견은 우문연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초대 황제 수문제(隋文帝)로 등극했고, 국호를 수(隋)나라로 개칭하고 장안을 수도로 삼았다.  
 
영양왕(嬰陽王)은 고구려의 26대 왕으로 25대 평원왕의 장남이다. 영양왕은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파악했다. 수문제는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양성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했다. 

 


1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문제가 한왕 양량(楊諫)을 대원수로 임명하고 30만 원정군의 침략이다. 육군은 강이식 장군에게 패배하자 철수했고, 수군은 폭풍을 만나 철수했다. 영양왕은 30만 대군의 침략을 목격하고 수문제에게 사죄하고 사신을 보냈다.  
 
2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양제가 반란으로 황제에 즉위하여 고구려 영양왕이 입조하지 않자 113만 육군 별동대와 해군 상륙군의 침략이다. 고건무에게 평양성에서 수나라군이 패배하자 철수하던 중에 살수에서 을지문덕에게 대배하고 철수했다.  
 
3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양제가 2차 침략의 치욕을 씻기 위해 35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침략한 전쟁이다. 고건무에게 요동성에서 수나라군에게 패배하고, 수나라 예부상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고, 병부시랑 곡사정이 고구려로 투항하자 철수했다.  
 
4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양제가 양현감의 반란을 진압하고 또다시 고구려 침략한다. 수나라군은 비사성을 함락하고 평양성으로 진격했다. 영양왕은 사신을 보내 위장으로 항복을 청하고 병부시랑 곡사정을 수나라로 돌려보내자 수나라군이 철수했다.  
 
양광(楊廣)은 수문제의 차남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 수문제와 황태자 양용을 처형하고 수양제(隋煬帝)로 즉위했다. 유례없는 폭정을 자행하고 세 차례의 고구려 원정에 실패했다. 이연(李淵)이 수양제를 폐위하고 황태손 양유를 황제로 옹립했다.  
 
고건무(高建武)는 25대 평원왕의 차남이자 26대 영양왕의 이복동생이다. 고건무는 수양제의 2차 침략 당시 수나라 4만 수군을 500 결사대로 막아내고 최고의 전쟁 영웅이 되었다. 영양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27대 영류왕으로 즉위했다.  
 
영류왕(榮留王)은 이연이 수나라를 이어 당나라를 건국하자 화친정책을 펼쳤다. 영류왕은 당태종이 고구려 침략의 야심을 파악하고 비사성(卑沙城)부터 부여성(扶餘城)까지 연결하는 장장 20여 년이 걸리는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성했다.  
 
영류왕은 대당 온건파로 태자 고환권(高桓權)을 장안 국자감에 입학시키고 대당 강경파인 연개소문을 제거하려 하였다. 오히려 연개소문이 막리지의 난을 일으켜서 영류왕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하고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박형수 기자 daeshin23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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