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단체장 4명과 서울교육감을 다시 뽑는 10·16 재보선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인천 강화군수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남 영광·곡성군수 선거에서 각각 승리하며 나란히 텃밭을 지켰다.
여전히 지역주의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선거 지형을 고려하면 예상했던 결과라 할 수 있다.
서울교육감 보선도 '그들만의 선거' 양상이 뚜렷했다.
정근식 후보를 내세운 진보 진영이 승리했지만 투표율이 극히 낮아 대표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 재보선은 국회의원이나 광역단체장 선거가 없는 '미니 재보선'에 불과했지만, 여당이 탄핵저지선을 겨우 지킨 지난 4월 총선 이후 첫 선거라는 점에서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인 한동훈·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치러진 첫 선거란 점도 관심도를 높였다.
여야 모두 리더십 타격을 우려해 텃밭인 부산과 전남에 당력을 총동원했다.
여야의 성적표는 결국 '현상 유지'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국적 관심 속에 치러진 전남 영광·곡성군수 재선거에서 원내 1당, '호남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두 곳 모두 축배를 들었다.
이례적인 야권 3파전에서 민주당은 진보당의 돌풍, 조국혁신당의 선전에 혼쭐이 났고, 당내에서조차 "상처 많은 영광(榮光)" "이기고도 진 것 같다"는 냉혹한 평가가 나왔다. 텃밭 수성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선거전이 '당 대 당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기표소 민심'이 조직력과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민주당으로 기운 것으로 풀이된다.
혁신당과 진보당의 존재감에 지역 정가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게 됐고, 치열한 난타전으로 심각한 선거 후유증도 우려된다.
당초 지역 정가에선 민주당 텃밭인 전남 영광 보궐선거구의 경우, 무소속 후보군 부재로 장세일 후보의 압승을 점쳤으나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새로운 선거 국면을 만들었다.
특히 조국 대표가 영광에 월세방을 얻고 '한달 살이'에 나서면서 민주당과의 지역 정치경쟁을 선포하자 인구 5만의 조용한 도시 영광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진보당은 전국의 당원들이 영광에 매일 같이 찾아와 쓰레기 줍기, 잡초 제거, 어르신 보행 도우미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으로 민심을 파고드는 선거운동으로 민주당과 혁신당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역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7~8일 이틀간 영광군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 진보당 이석하 후보지지 응답이 35.0%로 가장 높게 나오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장세일 후보는 33.4%, 혁신당 장현 후보는 27.4%로 각 2위와 3위로 밀려났었다.(95% 신뢰수준 내 오차 범위 ±4.4%p)
바짝 긴장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일 출정식 현지 유세에 이어 9일 영광을 방문해 이례적으로 1박 2일간 머물며 집중 지원 유세로 화력을 퍼부었다.
이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1일 당일 치기로 또 영광을 찾아 장세일 후보 지원 유세를 펼쳤다.
당대표 외에도 간판급 국회의원과 전남도당위원장, 전남 시·군 광역·기초의원도 모자라 광주지역 광역·기초의원까지 영광으로 총출동해 진보당과 혁신당의 약진을 차단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영광군수 재보선에서 패하면 이 대표의 리더십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고 2년 후 지방선거에선 혁신당의 세력 확장으로 콘크리트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해서다.
전남 곡성군수 재선거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접전 끝에 세번째 군수 도전으로 탄탄한 지역 인지도를 갖춘 민주당 조상래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조국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월세살이까지 하며 민심을 파고 드는 등 반전을 노렸지만 민주당 텃밭의 조직력을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6일 전남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곡성군수 재선거는 민주당 조상래 후보가 8706표(득표율 55.26%)를 획득해 5648표(35.85%)를 얻은 조국혁신당 박웅두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러나 냉철한 평가도 적잖다.
민주당의 동반 승리지만, 영광에선 과반에 실패했고, 곡성에선 가까스로 과반 지지선을 넘어섰다.
전남 전체 지역구 10곳 모두, 광역·기초자치단체장 23곳 중 19곳, 전남도의원 61명 중 57명을 민주당이 점유하는 등 '민주당 일극 체제'가 뚜렷한데다 당 대표가 3차례나 지원 유세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인 셈이다.
자연스레 자성론이 나온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기고도 진 것만 같다. 개운치 않다"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상처도 많다"고 밝혔다.
거꾸로 진보당 입장에서는 차기 지방선거 전초전으로 평가받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아성을 뒤흔들 수 있는 대항마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 혁신당은 영광, 곡성 모두에서 3분의 1의 지분을 확보하며 '전국 대중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 4월 재보궐선거, 2026년 6월 제9회 지방선거, 나아가 2028년 총선에서 다당 권력구도에 따른 지역정가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분할 구도가 고착화될 경우 전남지사 선거를 비롯해 상당수 지자체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혁신당, 진보당 등 다자 간 혈투가 빚어질 수 있고, 민주당 일색인 지방의회에도 지분다툼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