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애국지사) 삼의사 백정기
백정기(白貞基)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서 성장했고 19세에 서울로 상경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 전단을 가지고 고향 부안으로 내려가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서울 인천 등에서 일본인 및 군사 시설에 대한 공격 활동을 전개했다.
1924년 일본에 밀항하여 후지산 서쪽의 야마나시현 하야카와수력발전소 공사장을 폭파하려다가 실패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다시 일본으로 밀항하여 메이지 텐노를 암살하려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실패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1924년 베이징에서 이회영 정현섭 유자명 등과 함께 재중국 무정부주의자 연맹’을 창립했다. 백정기는 난징으로 거점을 옮겨 조선 중국 필리핀 일본 타이완 베트남 등 대표가 모여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했다.
1932년 상하이에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아나키스트들이 항일구국연맹(抗日救國聯盟)을 창립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행동대로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여 일본 요인을 암살하고 저격하여 '검은 옷을 입은 공포의 대상'으로 불렀다.
1933년 백정기 정현섭 원심창 등은 상하이 훙커우(虹口)에서 주중(駐中)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의 암살을 모의하다가 밀정의 고발로 육삼정(六三亭)에서 체포됐다. 백정기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마모토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조국의 자주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묻어주고, 무궁화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라오> 라는 유언을 남기고 39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백범 김구는 해방이 되자 '3의사 국민장 봉장 위원회'를 발족하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의 유해를 봉안하여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1963년 백정기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