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安珦, 1243년 ~ 1306년 9월 12일)은 고려 후기 문신·학자·교육자다. 원래 이름은 안유(安裕)이다. 노년기에 안향(安珦)으로 개명했고 조선 문종의 피휘(避諱)로 안유(安裕)로 불린다. 교서랑, 동경유수, 집현전대학사 등을 역임했고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를 방문했다.
안유는 원나라에서 주자의 저서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직접 필사하여 고려에 주자학을 최초로 소개했다.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畵像)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고 이제현, 백이정, 이조년 등 후학을 양성했다.
안유는 고려 충숙왕 때 문묘에 배향했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봉이 안유가 수학하던 숙수사(宿水寺) 터에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건립했다. 풍기군수 이황의 건의로 명종이 우리나라 최초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賜額)을 내렸다.
정몽주(鄭夢周)는 경상도 영천 출신의 고려 말의 유학자이다.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예문관제학, 수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신진사대부이다. 친원파를 배격하고 친명파가 되어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온건개혁을 주장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는 찬성하고 조선 개국에는 반대했다.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살해됐다.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여 정1품 영의정 겸 대제학으로 추증했고 충절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정몽주는 세종 때 간행된 삼강행실도에 충신으로 기록됐고 중종 때 문묘에 종사됐다. 정몽주는 길재를, 길재는 김종직을, 김종직은 김굉필을 가르쳤다. 포은(圃隱) 정몽주는 목은(牧隱) 이색, 야은(冶隱) 길재와 함께 고려삼은(高麗三隱)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