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18현 조광조와 이언적

  • 등록 2023.09.18 2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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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趙光祖)는 평안도 회천에서 종6품 찰방으로 재임하던 아버지 조원강(趙元綱)의 임지에서 무오사화로 유배온 김굉필(金宏弼)을 만났다.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에게 수학하여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아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조광조는 삼사의 언관으로 활동하며 소격서(昭格署) 폐지하고 현량과(賢良科) 실시하여 신진 사림파를 정계에 진출했다. 중종반정 공신들에 의해 폐출당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와 가짜 공신들의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주장하여 훈구파와 대립했다.  
 
조광조는 왕도정치 실현을 주창하다가 훈구파가 조작한 주초위왕(走肖爲王)으로 야기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되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사사됐다. 명종 때 영의정에 추증됐고 광해군 때 종묘와 문묘에 동시에 종사됐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 : 주(走)+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되니 조광조가 왕이 되려고 꿈꾼다는 뜻

 

○절명시(絶命詩), 숨지기 전 자신의 소회를 밝히는 최후 변론

愛君如愛父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이 하였고)
憂國如憂家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이 하였네)
天日臨下土 (밝은 해가 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昭昭照丹衷 (일편단심 내 충심을 더욱 밝게 비추네)

 
이언적(李彦迪)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양동마을 태생으로 본명은 이적(李迪)이다. 중종의 왕명으로 이언적(李彦迪)으로 개명했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희생되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학문 연구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이언적은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주창하며 영남학파를 창시했다. 밀양부사 전주부윤 대사성,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됐다.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유배되어 봉선잡의 대학장구보유 등을 저술을 하다가 사망했다.  
 
이언적은 광해군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문묘와 종묘에 동시에 배향됐다. 이언적, 이황, 송시열, 박세채, 김집과 함께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배향되어 동방6현이라 한다.

박형수 기자 daeshin23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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