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백아(伯牙)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행동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단장합니다.
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의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짊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의리가 드러나는 바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기로 결단하게 되며, 뜻을 세우는 것은 행동의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서백(西伯)은 백작으로 유리에 갇혔습니다. 이사(李斯)는 재상의 몸으로 다섯 가지 형벌을 다 당했습니다. 한신(韓信)은 왕의 신분이었지만 진(陳)이란 곳에서 붙잡혔습니다. 팽월(彭越)과 장오(張傲)도 한 때 왕 노릇을 하였으나 감옥에 갇혀 죄를 받았습니다.
강후(絳侯)는 여씨들을 타도하여 권력이 오패를 능가하였으나 청실(靑室)에 갇혔습니다. 위기후(魏其侯)는 대장의 몸으로 붉은 죄수복을 입고 목과 손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졌습니다. 계포(季布)는 주가(朱家)의 집에서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습니다. 관부(灌夫)는 거실(居室)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문왕(文王)은 갇힌 상태에서 ‘주역(周易)’을 풀이했고, 공자는 곤경에 빠져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굴원(屈原)은 쫓겨나서 ‘이소(離騷)’를 썼고, 좌구명(左丘明)은 눈을 잃은 뒤에 ‘국어(國語)’를 지었습니다.
손빈(孫臏)은 발이 잘리는 빈각(臏脚)이란 형벌을 당하고도 ‘병법(兵法)’을 남겼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蜀)으로 쫓겨났지만 세상에 ‘여람(呂覽)’을 남겼습니다. 한비자(韓非子)는 진(秦)나라에 갇혀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편을 저술했습니다. ‘시경(詩經)’ 300편의 시들도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안서(報任安書) 중에서-
2012년 5월 15일부터 눈에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허리를 수술하는 날에도 문산댁 장례식에도 생일날에도 코로나로 힘든 날에도 하루도 빠짐 없이 글을 써서 4,300여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2014년 10월 16일 <서일환의 역사야톡 1>을 시작으로 해마다 한 권씩 출간하여 2023년 9월 1일 <서일환의 역사야톡 10>을 출간했습니다. 주변분들이 요청하신 10권 출간기념 출판기념회는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그동안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교훈이 새삼 기억나는 시절입니다. 앞으로로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저자. 서일환 언론학박사 · 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10 목차>
1장 내 고향(故鄕)은 전라도
1-1 전주와 나주의 '전라도'
1-2 호남의 5대 명산
1-3 호남의 5대 정자
1-4 전라도 5대 특산물
2장 역사 속으로 여행(旅行)
2-1 몽골여행
2-2 캄보디아여행
2-3 동아시아
2-4 서아시아
2-5 이스라엘
3장 심장(心臟)을 울리는 시조
3-1 중국의 시인
3-2 당나라의 시인
3-3 고려의 시인
3-4 조선의 시인
3-5 조선의 여류시인
4장 통곡(痛哭)의 노래
4-1 투쟁의 노래
4-2 민족의 노래
5장 친일 매국노(親日 賣國奴)
[출처]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10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