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ㅣ
<도시 이름 정하기 ⑤ – 일본의 행정 사례편>
일본은 왜 행정통합보다 이름을 먼저 고민했는가
- 전남·광주 통합이 일본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 -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나면 법률을 정비하고, 조직을 개편하며, 예산과 청사를 조정하는 가시적인 작업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모든 절차에 앞서 깊이 고민해야 할 핵심 과제가 있다. 바로 새롭게 탄생할 공동체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름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명칭에 그치지 않는다. 통합의 목적과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그려갈 미래 비전을 담아내는 공동체의 상징이다. 이름을 정하는 방식에 따라 주민의 소속감과 통합에 대한 공감대는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현재 마주한 현장의 목소리는 냉담하다. 통합 논의가 무색하게 거리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대체 뭐가 다른가"라며 짙은 의구심을 표한다. 통합 이후의 명확한 비전도 제시되지 않은 데다,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정체성 있는 이름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온 터전의 정체성이 어디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정서적 뿌리를 잃어버린 듯한 심리적 소외감은 주민들 사이에서 점차 깊은 거부감과 냉소로 이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명칭마저 졸속으로 처리되자,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절박함은 비단 일시적인 불만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미흡하기만 하다. 출범을 앞두고 제시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약칭 ‘광주특별시’)' 라는 명칭은 미래 지향적 비전이라기보다, 두 행정구역을 기계적으로 이어 붙인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에 가깝다.
이 차제에 가까운 일본이 통합 과정에서 보여준 엄밀한 사전 준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일본은 대규모 시·정·촌 합병을 추진할 때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일본의 합병 추진 지역들은 출범 훨씬 전부터 준비 단계로서 '합병협의회'를 구성하여 새 자치단체의 명칭을 치열하게 논의했다. 명칭 제정을 통합 이후에 처리할 부수적 절차가 아니라, 주민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가는 필수적인 핵심 사전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름 정립 자체가 곧 주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의 여정이었던 셈이다.
'헤이세이 대합병' 당시, 어느 한쪽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발생할 주민들의 소외감과 갈등을 미리 방지하고자 일본은 '명칭선정 소위원회'를 두고 광범위한 주민 공모와 공론화를 실시했다. 이는 단순한 이름 붙이기를 넘어, 서로 다른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며 마음의 거리를 줄여가는 정밀한 정서적 준비 과정이었다.
반면 우리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통합 찬성 여론이 우세함에도, 반대 이유 1위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부족(28.2%)'이 꼽혔다. 일본이 명칭 결정 과정이라는 사전 준비를 통해 확보하려 했던 '정당성과 공감대'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한 이름은 행정구역만 합쳐 놓을 뿐, 주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 향후 내부 갈등과 정책 혼선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일각에서는 명칭 변경에 따른 도로 표지판 교체와 전산 시스템 정비 비용 등 약 500억 원의 예산을 우려한다. 그러나 일본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기적 행정 비용이 아닌 장기적 브랜드 가치다. 도시 브랜드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으며, 기업과 투자자는 도시의 이름에서 그 지역의 비전과 경쟁력을 읽어낸다.
'광주특별시'라는 임시 명칭이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라는 나열식 이름에서 어떠한 미래 산업과 정체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종이 행정수도를, 인천이 국제도시를 상징하듯, 통합특별시 역시 AI·에너지·문화수도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낼 고유의 브랜드가 필요하다. 눈앞의 500억 원을 아끼려다 향후 수십 년간 도시 경쟁력 약화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비할 바 없이 크다.
다행히 「광주전남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에는 특별시장이 주민과 의회의 의견을 수렴해 명칭을 변경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비용 지원 특례가 마련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적 타협으로 정해진 임시 명칭을 벗어던지고, 지역의 역사성과 미래 가치를 담아낼 이름을 찾는 진정한 공론화다.
일본의 경험은 통합의 성공이 행정조직의 단순 결합에 있지 않고,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함께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 설계의 출발점은 단연 '이름'이어야 한다. 정체성 없는 도시는 방향을 잃고 주민의 마음 또한 떠나게 된다. 미래 100년을 책임질 새로운 이름을 주민과 함께 다시 다듬어 나가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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