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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내가 태어날 때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 공영공존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공존공영 ①>

내가 태어날 때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 공영공존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

 

필자는 지금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질 때, 각자 이기심만을 품고 혼자 살아가라고 보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다독이고, 서로 기대며, 함께 살아가며 인류의 공영을 이루라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종교 이전에 존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순리가 아닐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언어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고, 감정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생존조차도 타인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함께 살라’는 전제가 내장되어 있다는 해석이 과도한 상상일까. 오히려 그것이 인간 존재의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각자도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은 미덕이 되었고, 성공은 개인의 성취로만 환원된다. 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실패가 아니라 고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도 기대지 못하는 삶, 누구에게도 쓸모가 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가장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인생은 끝없는 결핍의 연속이 된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삶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혼자 쓰일 때는 재능에 그치지만, 함께 쓰일 때는 가치가 된다.

 

자연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있다. 숲에서 가장 강한 나무는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뿌리는 서로 얽혀 있고, 그늘은 약한 생명을 보호하며, 떨어진 낙엽조차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된다. 자연의 세계에서 ‘쓸모없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 순환의 일부가 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뒤에서 다진다. 드러나는 역할과 보이지 않는 역할이 다를 뿐, 어느 하나도 불필요하지 않다. 공영공존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능력을 자기만을 위해 쓰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종종 “내가 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는 언제나 작은 책임의 축적에서 시작되었다. 다정한 한마디, 공정한 판단, 약자를 향한 한 걸음의 배려.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사회의 품격을 만들고, 공동체의 신뢰를 쌓아왔다.

 

어쩌면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완성되도록 설계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분명해진다. 혼자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빛을 밝혀주기 위해서다.

 

공영공존은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가장 가까운 삶의 방식이다. 이 단순한 진리가 다시 개인의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을 때, 사회는 조금 덜 거칠어지고, 미래는 조금 더 견고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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