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흔히 사도세자(장조)를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합니다. 대중매체 속 그는 광증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거나, 아버지 영조의 그림자에 가려 신음하다 끝내 뒤주에 갇혀 숨진 ‘정신 질환자’ 혹은 ‘비운의 세자’로 소비되곤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행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어두운 비극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잊고 지냈던 굳은 절개와 깊은 효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도세자의 삶에서 본받아야 할 참된 정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권력의 비정함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간적 도리와 신념입니다.
첫째, 비극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효심(孝心)'
사도세자의 효심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었습니다. 영조의 혹독한 질책과 끊임없는 불신 속에서도 그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 대신 자신을 먼저 탓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과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자신을 가두려는 영조의 명 앞에서도 군신(君臣)의 의리와 부자(父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저항 없이 뒤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살려주소서!"
그 처절한 외침은 단순히 살려달라는 애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끝내 인정받고 싶었던,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려 했던 한 인간의 가장 아프고도 깊은 효심의 표현이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 정조가 아버지를 향해 보인 지극한 효심의 뿌리 역시, 바로 사도세자가 심어둔 절절한 내리사랑과 효의 정신이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둘째, 타협하지 않는 '굳은 절개(節槪)'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는 당대 권력층이었던 노론 세력과의 대립이었습니다. 그는 약자의 편에 서서 대동법을 지지하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권력가들의 부정부패를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신념을 바꿀 수 있었던 조정에서, 세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백성을 위하고 옳은 길을 가겠다’는 의(義)를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진정한 절개란 평탄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안위가 위태로울 때 빛을 발합니다. 사도세자는 권력의 회유와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대의를 꺾지 않은 푸른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중한 가치들을 타협하곤 합니다.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고, 편안함을 위해 도리를 모른 척합니다. 가족 간의 정은 희미해지고, 사회적 신념은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뀝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세자의 삶은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인간적인 도리(효와 예)를 다하려 노력했던 마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굳은 의지
이제 우리는 사도세자를 광증과 비극의 프레임에서 가두어두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냉혹한 권력 투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그의 고결한 절개와 효심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 온전히 본받아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