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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과 칠산 바다의 영광굴비

고려의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왕실과 중복되는 혼인관계를 맺었다. 이자겸은 정2품 상서좌복야 (尙書左僕射) 이호와 통의국대부인 (通義國大夫人)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부인 최씨는 종1품 시중(侍中) 최사추의 딸이었다. 

 

조부 이자연은 종1품 중서령(中書令)을 지냈고 외조부 김정준은 정2품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이자겸은 16대 임금 예종의 장인이 되어 음서로 벼슬을 시작했다. 

 

 

인종이 즉위하자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냈다. 결국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이자 겹장인까지 되어 나라의 모든 일을 맡고 있다는 뜻으로 지군국사(知軍國事)라고 칭하며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을 믿고 ‘이자겸의 난’ 일으켜

 

이자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진족 금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고려를 속국으로 전락시켰다. 또한 이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을 믿고 인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려 하였다.

 

인종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이자겸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자겸이 왕궁을 불사르고 인종을 유폐시키고 국사를 마음대로 처리했다. 하지만 왕족 이수와 귀족 김부식이 ‘이자겸의 난’을 진압했다.

 

인종은 이자겸을 처형하지 않고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자겸의 딸들인 두 왕비는 폐위되어 쫓겨났고, 장흥 출신 임씨가 새로운 공예왕후가 되어 의종, 명종, 신종 3대 임금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자겸, 귀양지 영광에서 비굴하지 않겠다며 임금에게 굴비 바쳐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은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소금에 절여 법성포 바닷바람으로 말려서 인종에게 진상했다. 그리고 비록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절대로 굴복하거나 비굴하게 꺾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굴할 굴(屈) 아닐 비(非)의 '굴비(屈非)’라고 하였다.

 

조기(助氣)는 도울 조(助) 기운 기(氣)로 기운 차리는 것을 돕는다는 뜻이다. 민어과에 딸린 물고기로 참조기, 보구치, 수조기, 부세 등이 있으며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것이 굴비다. 


굴비 중에서 통보리 뒤주 속에 넣어 보관하는 보리굴비를 최고로 친다. 대체로 한국인은 참조기를 좋아하고 중국인은 부세를 좋아하며 일본인은 먹지 않는다.

 

'영광굴비는 밥도둑이다'는 속담도 있고 구두쇠가 천장에 매달아 놓고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밥 한 숟가락 먹었다는 동화도 있다. 영조가 입맛을 잃었을 때 조기를 먹고 입맛을 되찾았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쓰여 있다.

 

영광(靈光)은 쌀, 소금, 목화가 많은 곳이라서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또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이자 원불교 발상지며 기독교 순교성지다.

 

흥선대원군은 영광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이라고 하였다. 영광은 굴비, 모시송편, 백수해안도로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