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반도체 시대, 우리는 다시 묻고 있다 - 오늘날 우리는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단순히 자본을 투자한 사람의 소유물인가, 아니면 노동자와 소비자,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든 공동체적 자산인가. 이 질문은 오래된 논쟁처럼 보이지만, AI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다시 가장 첨예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 기업들을 둘러싼 성과급 논란과 노사 갈등은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성과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숨어 있다. 과거 산업사회 초기에는 기업의 성과를 자본가의 결단과 투자 결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실제로 공장을 세우고 위험을 감수한 것은 자본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첨단산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오늘날 반도체 기업 하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국가의 전력망과 용수 인프라, 세금 감면과 연구개발 지원, 대학의 공학교육, 숙련 노동자의 기술 축적, 협력업체 생태계, 소비자의 시장 신뢰가 모두 결합되어야 한다.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힘만으로 세계적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습니다.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지만, 어떤 인연은 마음 깊은 곳에 가만히 내려앉아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 입니다. 존중은 단순히 예의를 차리는 표면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침묵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삶의 밭에 ‘존중’이라는 씨앗을 뿌렸을 때, 과연 우리 삶에는 어떤 풍요로운 열매가 열릴까요? 1. 관계를 빛나게 합니다. 존중은 투박한 원석 같던 인간관계를 눈부신 보석으로 다듬어냅니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인정할 때, 관계의 마찰음은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만날 때, 그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래지 않고 조용히 빛을 발하게 됩니다. 2. 신뢰를 키워줍니다. 신뢰는 말만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방어벽을 내리고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 마음과 마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오늘 우리는 겨레의 영원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 629돌과 스승의 날을 동시에 맞이했습니다. 600여 년 전, 백성이 글을 몰라 제 뜻을 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한글을 창제하신 대왕의 정신은, 오늘날 정보의 장벽을 허물고 인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가치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1. 지식의 민주화: 한글과 AI의 공통 분모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당대 최고의 ‘지식 혁명’이었습니다. 일부 권력층이 독점하던 문자를 백성에게 돌려줌으로써 정보의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 했던 그 마음은, 복잡한 데이터와 기술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현대 AI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전 세계 지식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번역하며 '언어의 장벽'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2. 가르침의 진화: 지식 전달자에서 삶의 이정표로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새깁니다. 방대한 지식을 학습한 AI가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인간 스승의 역할은 더욱 고귀해졌습니다. 단순한 정보의 전수가 아니라, AI가 내놓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공존공영 ①> 내가 태어날 때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 공영공존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 필자는 지금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질 때, 각자 이기심만을 품고 혼자 살아가라고 보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다독이고, 서로 기대며, 함께 살아가며 인류의 공영을 이루라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종교 이전에 존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순리가 아닐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언어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고, 감정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생존조차도 타인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함께 살라’는 전제가 내장되어 있다는 해석이 과도한 상상일까. 오히려 그것이 인간 존재의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각자도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은 미덕이 되었고, 성공은 개인의 성취로만 환원된다. 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실패가 아니라 고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도 기대지 못하는 삶, 누구에게도 쓸모가 되
[광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구일암 기자 | 빌라마아트 (VILLA MAAT)'정대웅 대표 인터뷰를 하였다. 정대웅 대표는 최근 건설 및 인테리어 업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경영난을 겪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의 인테리어 설비 관련 피해 구제 통계에 따르면, 접수된 피해 사례의 과반수가 '부실 시공(하자 발생)'과 'A/S 지연 및 거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업계 전반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지고 있으며, 투명한 계약 구조와 책임감 있는 시공 능력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 속에서 철저한 품질 관리와 자체적인 책임 시공 시스템을 통해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바로 정대웅 대표이사가 이끄는 ‘빌라마아트 인테리어 그룹(VILLA MAAT INTERIOR GROUP)’이다. ■ 3번의 실패 딛고 일어선 현장형 CEO… "정직한 공간을 향한 집념“ 빌라마아트가 보여주는 흔들림 없는 원칙은 정대웅 대표이사의 굴곡진 창업 스토리에서 기인한다. 정 대표는 일찍이 목수, 전기, 싱글(지붕) 작업 등 건축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현장 실무를 익히고, 'JH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보랏빛 둥근 꽃머리 위에 밤새 내린 빗방울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 투명한 물방울들이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가슴 저편에 묻어두었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비처럼 스며듭니다. 살아계실 때는 공기처럼 늘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이 추억의 자리로 옮겨가신 후에야 깨닫습니다. 사랑에는 언제나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부모님이 주신 사랑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으나, 자식이 깨닫는 감사는 언제나 한 박자 늦은 과거형이 되곤 합니다. ◆선명해지는 목소리, 아스라한 눈 세월이 덧칠해져도 결코 흐려지지 않는 풍경이 있습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시던 목소리, 투박한 손길로 말없이 챙겨주시던 소박한 밥상, 그리고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애틋한 눈빛입니다. 그 모든 순간이 당시에는 당연한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간절히 닿고 싶은 기적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감사함에 미소 짓다가도, 이내 가슴 한 구석이 젖어오는 것은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두었던 효도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시간이 나면"이라며 미뤘던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공(公)의 리더십: 현대 정치의 성패와 종교적 세습의 경계 현대 정치는 흔히 ‘시스템의 예술’이라 불리지만,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리더의 ‘의지’다.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준다. 리더가 국가의 공적 자원을 자신의 사적 욕망이나 가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순간, 그 권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위기와 종교계의 세습 논란은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이 왜 지도자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 현대 정치: 사(私)에 매몰된 권력의 흔들림 최근 국제 사회에서 주목받는 푸틴, 시진핑, 에르도안, 그리고 트럼프의 사례는 공통된 맥락을 공유한다. 이들은 국가의 헌법적 절차나 경제적 합리성보다 ‘장기 집권’이라는 사적 목표를 우선시했다. 푸틴은 제국 부활이라는 개인적 환상을 위해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시진핑은 1인 지배 체제를 굳히기 위해 중국 경제의 역동성을 희생시켰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경제 원리를 부정했으며, 트럼프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절차를 개인의 불복으로 흔들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흔히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온 이들을 ‘탈북민’ 혹은 ‘새터민’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들을 수동적인 정착민으로 규정하는 용어 대신,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를 찾아 내려온 주체적인 존재로서 ‘북향민(北向民)’ 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한 단계 성숙했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나고 자라 이 땅을 일궈온 이들은 ‘남향민(南向民)’ 입니다. 결국 북향민과 남향민은 태어난 좌표만 다를 뿐, 한반도라는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내일을 설계하는 동반자이자 하나 된 민족의 두 줄기입니다. 1. 경계는 지도 위에만 존재한다. 분단 70여 년의 세월은 강산뿐만 아니라 사람의 언어와 습관마저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속에 그어놓은 ‘심리적 경계선’입니다. 북향민을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편견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보이지 않는 철책입니다. 북향민들은 먼저 온 통일의 주역들입니다. 그들이 남쪽 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은 장차 다가올 통일 시대의 예행연습과도 같습니다. 북에서 온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 아파트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곪아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내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최근 아파트 시장은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파고를 넘으며 '부실 공사'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19일 전해진 소유주들의 법적 분쟁 소식은 대한민국 주거 문화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침묵을 강요하는 '집값'이라는 족쇄 가장 뼈아픈 대목은 부실을 인지하고도 소유주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실이다. "집값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는 한 소유주의 토로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내 가족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문제조차 '자산 가치 하락'이라는 공포 앞에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하자를 덮어둔다고 해서 가치가 보존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난해 용산구의 한 맨션에서 발생한 '천장 콘크리트 낙하 사건'처럼, 방치된 부실은 결국 거주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아온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자산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다름없다. ◆‘설마’가 부른 인재(人災), 현재진행형인 공포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김필용 칼럼니스트 | ◆찬란한 초록의 환대 해마다 5월이 오면 세상은 온통 '축제 중'인 듯합니다. 메마른 가지를 뚫고 나온 연둣빛 잎사귀들은 어느덧 짙은 녹음으로 변모해 가고,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더 이상 차갑지도, 무겁지도 않습니다. 왜 우리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를까요? 단순히 날씨가 좋아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겨울의 침묵과 초봄의 변덕을 견뎌낸 생명이 마침내 가장 당당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곁에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달력에 빼곡히 적힌 기념일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평소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사랑, 스승의 은혜, 그리고 성장을 지켜봐 준 이들의 온기. 계절의 여왕은 우리에게 화려한 풍경만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관계'를 보듬어보라고 속삭입니다. ◆멈추어 서서 바라볼 용기 속도가 미덕인 시대, 우리는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5월의 햇살은 잠시 멈추어 서라고
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인연을 맺고 그 안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때때로 인생은 우리를 원치 않는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기도 합니다. 진심을 다해 쏟아부은 열정이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고, 선의로 시작한 발걸음이 예기치 못한 오해라는 벽에 부딪힐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속상함을 넘어선 깊은 허탈함입니다. ◆쏟아부은 열정 뒤에 찾아오는 ‘오해’라는 허탈함 누구보다 동분서주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오직 공동의 목표와 상생 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심이 ‘이기주의’라는 왜곡된 프레임에 갇힐 때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제안했던 아이디어들이 자칫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되는 순간, 우리가 지켜내려 했던 상생의 가치는 본질을 잃고 표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해지는 험담의 날카로움 무엇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직접적인 갈등보다 ‘건너 들은 이야기’입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서운함이나 비판이 제3자의 입을 거쳐 전달될 때, 그 메시지는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이름도 못 정하는 통합, 누구를 위한 특별시인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드는 느낌은 무엇인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인가, 아니면 급하게 이어 붙인 행정적 편의의 흔적인가.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의 명칭은 통합의 비전이 아니라 준비 부족의 결과물에 가깝다. 도시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며 방향이며, 그 도시가 어떤 미래를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선언이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이름에서는 그 어떤 철학도, 방향도 읽히지 않는다. 이름 하나에서조차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통합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시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 ‘붙여놓은 이름’, 통합이 아니라 봉합이다 ‘전남’과 ‘광주’를 그대로 이어 붙인 이름은 통합이 아니라 봉합이다. 갈라져 있던 두 지역을 하나로 묶겠다는 의지라면, 최소한 새로운 이름 속에 새로운 정체성이 담겨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명칭은 과거의 두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위에 ‘통합’이라는 단어만 덧붙여 놓은 수준이다. 이런 이름으로는 통합 이후에도 갈등의 구조를 해소하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