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논의에 다시 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여야 공히 예금보호한도를 상향하는 법안을 제출해 놓은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예금보호한도 1억원 상향을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다만 예금보호한도 상향시 금융소비자에게 예금보험료 인상분이 전가될 수 있고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으로의 쏠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제기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2일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자는 것은 국민도 원하고 민주당도 약속했고 집권여당도 약속한 일"이라며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서라도 신속히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선제적 예방조치 차원에서 예금보호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금융기관 파산시 예금보험공사(예보)가 1인당 특정 금액까지 원금과 이자를 보호해주는 예금자보호제도는 지난 2001년 당시 1인당 GDP 규모를 고려해 5000만원으로 정해진 뒤 현재까지 24년째 변함이 없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2.7배 가량 상승했고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보호한도 자체도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은행 예금을 기준으로 미국은 25만달러, 일본은 1000만엔, 영국은 8만5000파운드의 보호한도를 두고 있다.
1인당 GDP 대비 은행업권의 보호한도 비율을 따져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약 1.2배에 그쳐 미국(3.1배), 영국(2.2배), 일본(2.1배) 등에 비해 낮다.
또 해외 주요국들은 업권과 상품의 특성을 반영해 보호한도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5000만원이란 일률적 한도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위기 등이 잇따르면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논의에 불을 지피기도 했지만 국회에서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이런 가운데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 이 대표가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까지 시사하면서 예금보호한도 상향 논의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국회에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골자로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여야를 통틀어 8건 발의돼 있다.
개정안들은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거나 대통령령으로 지정 또는 국무회의 심의 등을 통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예금보호한도 상향의 실익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현행 예금보호한도인 5000만원 이상을 예금한 고객이 극히 일부에 그치는 상황에서 보호한도 상향의 효과가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금보호한도를 상향할 경우 금융사가 적립하는 예금보험기금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대출금리 상승 등의 금융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예금보험공사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릴 경우 보호한도 내 예금자 비율은 98.1%에서 99.3%로 1.2%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치며 한도 상향의 편익은 전체 예금자의 1.9%에 불과한 5000만원 초과 예금자에게만 국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호예금 비율은 51.7%에서 59.0%로 7.3%포인트 증가해 보호효과는 다소 강화되지만 장기적으로 예금보험료가 인상돼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금보호한도가 상향될 경우 은행에 비해 안정성은 다소 떨어져도 높은 금리를 제공하던 저축은행 등으로 자금이동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분석에 따르면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면 주로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이동이 발생하고 저축은행 예금은 16~25%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이유로 금융당국도 신중한 분위기다.
한도 상향의 필요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예보료의 소비자 부담 전가와 업권 쏠림 등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린다고 할 때 금융권 간 자금이동이 있을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 은행으로 또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쪽으로 가든 자금이 한쪽으로 쏠리면 그 과정에서 불안 요안이 될 수 있다"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2금융권 건전성 문제를 조금 안정시킨 이후에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