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불법 전화 홍보방을 운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준호 의원(광주 북구갑)이 "수사 검사가 공소까지 제기해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공소 기각을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해당 법령에 대한 해석 여지가 있고 공소 기각에 이를만 한 하자도 아니다"고 맞섰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박재성 부장판사)는 17일 301호 법정에서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광주 북구갑 정준호(45) 의원과 선거사무소 관계자 2명에 대한 변론을 종결했다.
재판부는 당초 다음달 3일까지 2차례 더 변론 기일을 잡아 증인 신문 절차를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정 의원 측 법률 대리인이 검찰청법 위반이라며 공소 기각을 주장하면서 중대 쟁점으로 떠오르자 변론을 종결하고 검토키로 한 것이다.
정 의원 측 법률 대리인은 최근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을 수사 개시한 검사가 공소까지 제기해 검찰청법을 위반했다. 명백한 공소 기각 사유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 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을 위반해 무효이므로 공소 자체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 측은 "같은 법 단서(예외) 조항은 이른바 '송치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선거관리위원회 고발로 검찰 수사가 개시됐다. 판례에 따라 선관위는 사법경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 단서 조항 역시 적용될 수 없다"며 공소 기각 논리를 펼쳤다.
또 대법원 판례를 들어 "공소가 취소된다면 재기소는 헌법 제13조1항 후문 '거듭처벌금지의 원칙'의 정신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정 의원 측이 문제 삼은 검찰청법은 2022년부터 개정안이 시행된 이른바 '검수완박법'이다.
개정 검찰청법 4조 2항은 '검사는 자신이 수사 개시한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법 취지에 따라 대검찰청은 '검사 수사 개시 범죄의 공소제기 등에 관한 지침(예규)'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검찰이 직접 인지하고 수사까지 한 사건은 수사 검사들이 기소할 수 없다는 취지다.
4조 2항 조문에서 '다만'으로 시작하는 단서 조항에 따라, 사법경찰이 수사를 거쳐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 수사한 사건은 해당 검사가 기소까지는 할 수 있다.
[광주=뉴시스] 광주고등·지방검찰청.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광주고등·지방검찰청.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반면 검찰은 "수사 개시 범위 등 개정 검찰청법에는 해석 여지가 있다"며 단서 조항 적용이 가능,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검찰청법 4조 2항은 절차적이고 사무 분담에 대한 규정인 만큼, 공소 기각 판결에 이를 만한 하자가 아니다"면서 "설령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진다 해도, 공소 기각은 '이중 처벌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론과 판례로 확립돼 있어 형사소송법 253조에 따라 즉시 재기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기소 제기 시점부터 시효가 정지된다. 공소 기각 판결을 하더라도 선고일로부터 정지된 시효가 시효 만료 시까지 넉넉한 시간동안 다시 기소할 수 있다. 즉시 재기소할 수 있는 만큼, 재판부가 공소 기각 판결을 해도 실효성이 없는 무용한 절차다. 처벌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기소일인 지난해 7월24일부터 선거법의 시효는 정지되고 이번 총선 공소시효 만료일인 같은해 10월10일까지 79일 가량의 시효가 남아있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공소 기각 판결일로부터 79일 안에 검찰이 재기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검사는 "공소 기각 사유가 없으므로 변론을 재개하고 재판을 예정대로 진행해 달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 3명은 모두 공소 기각을 주장했다.
정 의원 등 3명은 민주당 내 경선 직전인 지난해 2월께 당시 경선 후보였던 정 의원의 지지율을 올리고자 전화홍보원 12명에게 홍보 전화 1만5000여 건을 돌리도록 지시하거나 홍보 문자메시지 4만여 건을 발송하고, 그 대가로 경선 운동원들에게 총 520만원을 지급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 의원은 또 2023년 말부터 지난해 초 사이 최씨와 박씨를 비롯한 6명을 선관위에 선거 사무 관계자로 신고하지 않은 채 불법 경선 운동을 하도록 지시하고, 현금을 건네거나 일부를 지급 약속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정 의원은 2023년 7월 건설사 대표 A씨에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딸을 보좌관으로 채용해주겠다고 약속, 그 대가로 정치자금 5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받고 있다.
앞선 재판에서 정 의원 측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시점에 불법 홍보방을 운영할 필요성이 없고 관련해 지시한 바도 없다. 일부 문자홍보원에 대한 금품 제공 사실을 사후에 알게 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역시 "당시 운영하던 변호사 사무실 경비가 필요해 빌린 것이고 당선 직후 갚았다. 자녀 채용은 약속한 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14일 오후 2시 선고 재판을 열어 양측의 공소 기각 주장에 대해 판단키로 했다.
만약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지면 정 의원은 당장의 직위상실 위기는 모면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공소 시효 정지 문제가 남아있지만 검찰이 즉시 재기소 입장을 밝힌 만큼, 다시 법정에 설 확률도 높다.
선거법 공소시효를 차치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다시 기소할 수 있다. 실제 정 의원 측은 이날 오후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건설사 대표 A씨에게 "돈을 단순히 빌린 것 아니냐", "명시적인 채용 약속은 없지 않았느냐" 등 취지로 질문하며 혐의를 벗고자 힘썼다.
반대로 재판부가 공소 기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이번 재판의 변론 절차는 다시 재개된다.
한편, 변호사 출신인 정 의원은 지난해 2월 치러진 민주당 광주 북구갑 후보 경선에서 조오섭 현역 의원을 꺾었다. 그러나 불법 전화홍보방 운영 수사가 시작되면서 공천장 인준이 지연돼 뒤늦게 공천을 받았고, 최종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