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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참 스승, 송기숙 교수

민중문학의 개척자, 살아있는 양심으로 존경받아

(인물탐구) 참 스승, 송기숙 교수
민중문학의 개척자, 살아있는 양심으로 존경받아

 


송기숙은 전남 장흥 출신의 소설가이자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문학평론 ‘이상서설(李箱序說)’이 추천되었다. 단편집 ‘백의민족’,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 ‘녹두장군’, ‘암태도’ 등을 발표했다.

 

1978년 6월 27일 송기숙 등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은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문을 발표했고 6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지지 시위를 벌였다. 선언문은 유신 정권의 교육 이데올로기였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고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참여 교수 11명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대학생 30 여 명은 구속, 제적, 정학을 당했다. 송기숙은 4년형을 선고받고 1년 1개월을 복역했다가 제헌절 특사로 석방되었고 1984년 전남대학교에 복직되었다.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교육민주화 선언으로 옥고와 해직까지
2013년 3월 29일 송기숙 등 8명은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치매를 앓고 있던 송기숙은 35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광주지법 형사12부 신현범 부장판사는 “무죄판결을 이제야 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1980년 전후는 민주화 열기가 분출하던 시대였다. 1980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도청 앞 분수대에서 '민주화대성회'가 열렸다. 송기숙을 비롯한 교수들이 태극기와 횃불을 앞세우고 시민들과 행진했다. 신군부는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를 이유로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 일원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5월 18일 오전부터 광주에서는 항쟁이 시작되었다. 

 

송기숙은 사태가 잠잠해진 뒤에 돌아오기로 하고 광주를 빠져나가 서울로 피신했다. 광주에서 잔인무도한 만행이 벌어지자 내려가서 죽더라도 모두 같이 죽자는 각오로 다시 광주로 돌아와 시민수습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무기를 반납하자는 온건파와 무기를 반납할 수 없다는 강경파가 대립하고 계엄군이 강경진압을 시작하자 다시 서울로 피신했다. 8일 간의 해방광주는 계엄군에게 진압됐고 송기숙은 계엄군이 내세운 ‘일계급 특진과 상금 3백만원’이 걸린 지명수배자가 되었다. 결국 6월 27일 자진 출두하여 보안대 지하실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수습을 빙자한 폭동지휘자' 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내란죄를 적용받아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0개월을 복역하였다.

 

신군부의 정권찬탈과 계엄군의 만행에 저항하여 다시 옥고
송기숙은 해직 7년 만인 1984년 8월 17일 전남대학교 교수로 복직했고 19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창립하여 초대 의장을 지냈다.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2004년 대통령직속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30년 전 대학시절 첫번째 교양국어 수업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중년의 송기숙 교수는 뚜벅뚜벅 들어오시더니 칠판에 ‘참여시, 순수시’라고 두 단어를 분필로 적으시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학생들은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그 변화를 추구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 '참여시,이며 언어 자체나 그 음조를 중시하여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순수시' ”라고 답했다. 

 

 

 “일제 치하에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이 신음할 때 자연을 찬미하고 일제를 찬양하는 것이 과연 순수한가? 조국 광복을 주장하고 식민지 고통을 폭로하는 것이 가장 순수하지 않은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독재자가 민주화 요구를 짓밟는 현실에 대해 학생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라.”고 교수님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군부 독재 치하에서 학자의 양심을 지킨 송기숙 교수, 그는 대하소설 ‘녹두장군’을 저술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알린 점을 평가받아 2015년 5월 동학농민혁명 대상을 받았다.

(언론학 박사 서 일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