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5 (화)

  • 구름조금동두천 17.1℃
  • 구름조금강릉 21.3℃
  • 구름조금서울 19.5℃
  • 구름조금대전 18.3℃
  • 구름많음대구 21.6℃
  • 흐림울산 21.5℃
  • 흐림광주 19.5℃
  • 흐림부산 22.0℃
  • 구름많음고창 18.3℃
  • 구름많음제주 22.3℃
  • 맑음강화 16.9℃
  • 구름조금보은 15.9℃
  • 구름많음금산 16.6℃
  • 흐림강진군 20.9℃
  • 구름많음경주시 21.1℃
  • 흐림거제 21.2℃
기상청 제공

실시간 뉴스


처세의 달인, 풍도(馮道)-백성을 평안케 하라.

설시(舌詩) / 풍도(馮道)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면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 몸이 어디에 있든지 편안하리라   

 

 

풍도(馮道)는 인생살이가 입이 화근(禍根)임을 깨닫고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 조심 하고 혀를 감추고 말 조심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한 것이다.

 

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하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구한 진리이다. 
심신(心身)이 편안한 삶은 말을 삼가하는 것이다.
 
풍도(馮道)는 882년 태어나서 954년 사망하여 73세까지 장수한 정치가이다. 풍도는 청렴하고 검소했고 지혜가 많았다. 후당, 후진, 요, 후한, 후주 등 다섯 왕조에서 열한 명의 군주를 섬겼다. 30년 벼슬 중에서 20년 동안 네 왕조의 재상을 역임했다.   
 
875년 환관들의 수탈과 횡포에 저항하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는 멸망의 길을 재촉했다.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9대 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건국하여 오대십국 시대(五代十國 時代)가 시작했다.    
 
풍도는 이존욱이 후당(後唐)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자 재상으로 등용됐고 2대 이사원, 3대 이종후, 4대 이종가까지 모셨다. 석경당이 후진(後晉)의 황제로 즉위하자 다시 재상으로 등용됐고 2대 석중귀까지 모셨다.    
 풍도는 유지원이 후한(後漢)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하자 또다시 재상으로 등용됐고 2대 유승우, 3대 유윤까지 모셨다. 곽위가 후주(後周)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자 재상으로 등용됐고 2대 세종까지 모시다가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풍도는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다섯 왕조에서 11명의 군주를 모셨다. 풍도는 자서전 장락노자서(長樂老自敍)를 집필하여 권력을 위해서는 군주와 충성, 친구와 의리는 모두 버리고 오뚜기처럼 살았던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당송팔대가 한 사람이자 북송의 역사학자인 구양수(歐陽脩)는 "과연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자구나!" 라며 ‘관리만 될 수 있다면 늘 즐겁게 보냈으며, 관직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관직만 있으면 만사가 족하였다’ 라고 풍도를 평가했다.   
 
후주의 2대 세종 곽시영이 오대십국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사망하자 7세에 불과한 어린 아들 시종훈이 3대 공제로 즉위했다. 후주의 장수들이 어린 황제를 앞세우고 요나라와 북한의 연합군과 싸우는 것을 불안해 하였다.    
 
960년 조광윤은 진교의 변(陳橋之變)으로 후주(後周)의 마지막 황제인 시종훈으로부터 선양받아 송나라를 건국하여 오대가 끝났다. 970년 송태종 조광의가 마지막 남은 십국의 북한(北漢)을 정복하여 십국이 끝났다.

 

처세의 달인 풍도(冯道)에 대한 평가는 최악의 간신배에서 최고의 명재상까지 극과 극이다.
어떻게 처세를 했으면 그처럼 빈번하게 바뀌는 왕조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난세에 처하여 민중 생활의 안정을 보살폈으므로 사람들로부터 관후한 어른으로 칭송받았다.  제로 왕조 교체 때마다 백성들의 대참사가 적었던 것은 그의 처세 덕이라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위인에서 반역자로, 간웅에서 고금의 영웅으로 바뀐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그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 풍도 역시 그랬다.


난세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충의의 길을 걷는 것은 후세가 기억해 주는 영광의 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보여주는 길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 위정자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충의의 길을 걸으시라.

 

맹자가 “사직(社稷)이 중요하지 임금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정치의 요체이다.
사(社)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직(稷)은 백성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백성이 하늘이고 민심이 천심이며,

이를 거스르는 임금은 방벌(放伐)의 대상이란 이야기이다.

 

글. 서일환(언론학박사, 역사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