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현대인의 일상은 철저히 지면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고층 빌딩의 콘크리트 바닥, 합성 고무로 된 신발 밑창,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는 우리를 대지와의 연결로부터 단절시켰습니다.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지구라는 거대한 에너지원으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킨 셈입니다.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어싱(Earthing, 맨발 걷기)’은 단순한 건강 비법을 넘어, 본래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류의 본능적 회귀라 할 수 있습니다. 1. 자연과의 전기적 균형: 몸 안의 ‘정전기’를 비우다 우리 몸은 전도체입니다. 끊임없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PC 등 가전제품과 각종 전자기기 속에서 우리 몸은 양전하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반면, 지구는 거대한 마이너스(-) 전하를 띤 배터리와 같습니다. 맨발로 땅을 밟는 순간, 우리 몸에 쌓인 과도한 양전하는 땅으로 흘러 내려가고(접지), 지표면의 자유 전자가 몸속으로 유입됩니다. 이 과정에서 체내 전위가 0V로 맞춰지며 전기적 평형 상태를 이룹니다. 이것이 어싱의 가장 핵심적인 물리적 원리입니다. 2. 염증의 해독제, 자유 전자 현대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목소리는 권력이다 : '읽었을 뿐'이라는 면죄부에 대하여 최근 한 방송사의 특집 프로그램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내레이터(narrator)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인물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진실은 뒤늦게 제자리를 찾았지만, 한 개인의 삶은 이미 난도질당한 후였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로 누군가를 범죄자로 지목했던 그 '목소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대리인'이 아닌 '보증인'으로서의 내레이터 방송에서 내레이터의 역할은 단순히 원고를 소리 내어 읽는 기계적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대중적 신뢰가 높은 인물일수록 그 목소리는 시청자에게 일종의 '인증 마크'로 작용한다. 제작진이 공들여 유명 인사를 내레이터로 섭외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이 가진 '신뢰 자본'을 프로그램에 입히기 위해서다. 시청자는 내레이터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과 호흡을 통해 사건을 판단한다. 내레이터가 특정인을 범죄자로 지목하며 리얼하게 상황을 묘사할 때, 시청자는 그 목소리를 믿고 의심의 벽을 허문다. 즉, 내레이터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자신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④> 디지털 화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암호화폐 논쟁이 뜨거워질수록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자유’다. 중앙 권력의 통제를 벗어난 화폐, 국가를 거치지 않는 거래, 개인이 스스로 통제하는 자산이라는 이미지가 암호화폐의 매력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지금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디지털 화폐의 흐름을 보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디지털 화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우선 구분이 필요하다. 민간 암호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같은 ‘디지털’이라는 외형을 공유할 뿐, 철학과 목적은 정반대에 가깝다. 민간 암호화폐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한다. 기술의 외피는 같을 수 있어도, 주인은 다르다. 국가가 디지털 화폐를 검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 결제 시스템의 효율화, 금융 포용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통화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즉, 디지털화폐는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제도적 도구’다.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용서는 미덕이지만, 아무 때나 건네는 말이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용서하라”는 말을 너무 쉽게 쉽게 꺼낸다. 갈등이 생기면 누군가는 중재자의 위치에서, 또 누군가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 말을 던진다. 그러나 과연 용서는 그렇게 가볍게 권할 수 있는 일일까. 필자는 오래전 한 경험을 통해 용서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 상황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를 용서했지만,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상대는 그것을 화해의 신호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 조직과 동료들에게까지 과도한 요구를 이어갔다. 결국 그 용서는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경험은 여러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용서는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성서는 용서를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용서를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하시오(마태복음 18:21~22)”라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지녀야 할 자비와 관용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성서에는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이 낳은 고독사는 우리사회가 풀어야할 과제다. 고독사(孤獨死)란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죽는 것을 말한다. 즉,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독사 기준은 2021년 4월 시행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된다. 고독사는 우리사회의 아픔이다. 이웃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1인 가구 모니터링 등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 충분한 조건은 아니지만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이를 줄일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싶다. 정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독사 위험군을 파악하고 예방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은 가족 및 친지와의 교류 단절, 1인 가구 증가, 개인주의 확산. 실직, 이혼 등 위기 상황에서 도움 요청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발견이 늦어지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고독사는 경제적 빈곤에서 오는 장기간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③> 화폐라는 성벽 : 국가는 왜 암호화폐를 용인하지 않는가 암호화폐를 옹호하는 이들은 종종 국가의 규제를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권력의 횡포’로 규정하곤 한다. 국경 없는 화폐, 중앙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거래라는 수식어는 매혹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화폐를 사용해 온 긴 역사를 복기해 보면, 국가가 암호화폐를 향해 세운 높은 성벽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생존 본능이자, 수백 년간 처절한 대가를 치르며 얻어낸 ‘질서’와 ‘권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화폐가 국가의 독점적 권리가 되기 전,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17세기 영국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수많은 민간 은행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은행권(Banknote)을 발행했다. 화폐의 가치는 제각각이었고, 은행이 파산하면 그 지폐는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돌아왔다. 결국 1694년 영국 정부가 영란은행(Bank of England)에 독점적 발행권을 부여하며 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지식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지혜'에 목말라 있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 등장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네 글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격물(格物)"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드는 공부다. 이는 단순히 책 속의 이론을 암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근본 원리를 찾아내는 치열한 탐구 과정이다. "치지(致知)"는 그렇게 얻은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가질 수 있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볼 줄 아는 눈, 그것이 바로 세상을 올바르게 이끄는 리더의 '지식'이다. 격물치지의 정신은 현대의 여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첫째, 현장 중심의 실천력이다. 책상 앞의 기획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부딪히며 해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격물(格物)의 자세다. 둘째, 본질을 향한 진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②>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지난 회에서 우리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이 왜 늘 가격과 속도의 질문에 갇히는지, 그리고 그 질문들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암호화폐 논의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소환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혁신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과, 그 기술 위에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제2회에서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해 묻고자 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과연 화폐인가.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다. 암호화폐를 비판하면 곧바로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화폐를 자처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순간, 논의는 흐려진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이라는 기술적 개념을 바탕으로 데이터의 위·변조를 어렵게 만드는 장점을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페 시리즈 ①> 암호화폐 앞에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들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빠르다. 가격은 순식간에 오르고 내리며, 시장은 늘 “지금이 기회인가”라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 속도만큼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는 무엇을 묻고 있고, 무엇을 묻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지금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흔한 질문은 가격에 관한 것이다. 얼마나 오를 것인가, 언제 들어가야 하는가, 이번에는 과연 다른가. 이러한 질문들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잘못된 질문은 설령 맞는 답을 얻더라도,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에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의 수준이다.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주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기술의 발전은 곧 새로운 화폐를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혁신적이라는 사실과, 그 위에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 둘은 종종 하나로 묶인다. 기술에 대한 기대가 곧바로 가격에 대한 확신으로 전환되는 순간, 판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차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선거를 향한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거주하는 경기도는 단순한 광역자치단체를 넘어 '소(小) 대한민국'이라 불릴 만큼 상징성이 크다. 특히 민주당 입장에서 경기도는 반드시 수성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는 다섯명의 후보군이 출마하여 경선 열기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가장 냉철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은 '선명성'보다 '확장성'이다. 즉, 당내 지지층을 결집하는 수준을 넘어, 승부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가 본선 승패를 가르는 핵심 척도가 될 것이다. 중도층은 '실용'과 '안정'을 선택한다. 경기도는 신도시 개발과 기업 유입으로 유권자 지형이 매우 역동적이다. 특정 정당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기보다, 내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과 '유능함'에 반응하는 실용적 중도층 비중이 높다. 따라서 본선에서 승리하려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정쟁에 매몰된 정치인보다는 행정가로서의 실무 역량을 증명했거나, 합리적 보수층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⑥ > 민주주의의 적은 독재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가장 조용한 방식 -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제도가 아니다. 총성이 울리거나 군홧발이 등장해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부분 아주 조용하게,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진행된다. 그 이름은 독재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독재는 적어도 경계의 대상이다. 위협이 분명하고, 저항의 이유도 명확하다. 그러나 무관심은 다르다. 그것은 위험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곤해서”, “먹고 살기 바빠서”, “내가 관여해도 달라질 게 없어서”라는 말 속에 숨어 사회 전반에 퍼진다. 이렇게 무관심은 민주주의의 내부에서, 저항 없이 제도를 잠식한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연료로 삼는다. 투표, 토론, 감시, 질문, 비판 같은 일상적 행위들이 멈추는 순간, 제도는 껍데기만 남는다. 선거는 치러지지만 선택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의회는 존재하지만 시민의 삶과 멀어진다. 형식은 남아 있지만 내용은 비어간다. 무관심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책임의 공백을 만들기 때문이다. 시민이 관심을 거두면, 권력은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⑤> 질문을 멈춘 사회는 퇴보한다 - 교육·언론·제도의 경직화가 만드는 침묵의 구조 - 사회가 건강할 때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의외로 조용한 질문들이다. “왜 그런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 결정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질문은 사회의 속도를 늦추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향을 바로잡는 브레이크다. 이 브레이크가 사라질 때 사회는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진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의 공기는 단순해진다. 복잡한 설명은 줄고, 단정적인 구호가 늘어난다. 비판적 사고는 불편함으로 취급되고, 질문은 분위기를 흐리는 행위로 여겨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묻지 않는 법을 배운다. 질문을 던지기보다 눈치를 보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는 신호가 사회 전반에 퍼진다. 이 현상은 교육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교육이 질문을 키우는 과정이 아니라 정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으로 바뀔 때, 학생들은 사고의 근육을 잃는다. 왜 그런지 묻기보다, 무엇이 나오는지를 외운다. 질문은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