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목소리는 권력이다 : '읽었을 뿐'이라는 면죄부에 대하여
최근 한 방송사의 특집 프로그램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내레이터(narrator)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인물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진실은 뒤늦게 제자리를 찾았지만, 한 개인의 삶은 이미 난도질당한 후였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로 누군가를 범죄자로 지목했던 그 '목소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대리인'이 아닌 '보증인'으로서의 내레이터
방송에서 내레이터의 역할은 단순히 원고를 소리 내어 읽는 기계적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대중적 신뢰가 높은 인물일수록 그 목소리는 시청자에게 일종의 '인증 마크'로 작용한다. 제작진이 공들여 유명 인사를 내레이터로 섭외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이 가진 '신뢰 자본'을 프로그램에 입히기 위해서다.
시청자는 내레이터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과 호흡을 통해 사건을 판단한다. 내레이터가 특정인을 범죄자로 지목하며 리얼하게 상황을 묘사할 때, 시청자는 그 목소리를 믿고 의심의 벽을 허문다. 즉, 내레이터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자신의 이름과 얼굴로 보증한 셈이다. 그런데 결과가 허위로 드러났을 때 "나는 적힌 대로 읽었을 뿐"이라고 발을 빼는 것은, 보증을 서놓고 사고가 터지자 인감도장만 빌려줬을 뿐이라며 도망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신뢰를 팔았다면, 책임도 함께 팔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지도와 신뢰는 곧 거대한 자산이다. 내레이터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영향력을 동시에 얻는다. 영향력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독성'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특정인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행위에 가담했다면, 그 화살이 빗나갔을 때 발생하는 비난 또한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자의 최소한의 상식이다. 이익을 취할 때는 '신뢰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책임질 때는 '단순 전달자'로 숨어버리는 이중적 태도는 시민들이 기대하는 언론 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 침묵하는 목소리, 사과가 필요한 이유
가장 큰 문제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온 뒤에도 이어지는 내레이터들의 침묵이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은, 그동안 방송이 쏟아낸 말들이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는 흉기였다는 뜻이다. 그 흉기를 휘두르는 데 앞장섰던 목소리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시청자를 기만한 행위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면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제작진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믿었던 시청자와 억울하게 고통받은 당사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언론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자, '신뢰'를 자산으로 삼는 직업인이 갖춰야 할 마지막 품격이다.
◆ 나가는 글: 목소리 뒤에 숨지 마라
방송은 공동의 작업이며, 그 결과물은 모든 참여자의 공동 책임이다. 특히 시청자의 귀를 장악했던 내레이터는 그 책임의 핵심부에 서 있다. '읽는 순간 책임이 시작된다'는 명제는 가혹한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마이크를 잡는 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직업적 문법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책임한 목소리에 속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도구로 쓰였다면, 이제는 그 목소리로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