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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서일환의 역사야톡(8) 공자(孔子)특집 1~2

공자특집 1 ‘공자(孔子)’
공자특집 2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

서일환의 역사야톡(8) 공자(孔子)특집 1~2

 

 

●공자특집 1.  공자(孔子)

 

공자(孔子)는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현, 산둥성 지역) 출신으로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기원전 551년 숙량흘과 안징재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 홀로 공자를 키웠다. 16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3년상을 지냈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여 유학의 기초 경전을 정립하였으며, 이 예악(禮樂)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실현을 목표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실상 유학(儒學)의 창시자라 볼 수 있다. 노(魯)나라는 기원전 1046년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이 주공(周公)에게 내린 제후국으로 기원전 256년 초나라에 멸망했다. 주공은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이 동생으로 형인 무왕과 조카인 성왕을 보좌했다. 주공은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를 저술했다. 공자는 주공을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받들었고, 주공의 종법제를 회복해서 천하를 평화롭게 하고자 노력했다. 50대에 이르러 노나라의 중도재(中都宰 수도의 시장격)를 지냈는데 잘 다스렸다. 이에 노나라 정공(定公)의 신임을 얻어 지금의 법무부장관격에 해당하는 대사구(大司寇)의 벼슬까지 제수받았다. 중앙정계에 들어온 그는 노나라의 세 권세가인 삼환(三桓)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과업을 맡았으나 끝내 좌절되었고, 그는 실각하였다. 실권자의 미움을 받자 자신의 이상이 노나라에서 실현될 수 없음을 안 공자는 이후 여러 제자를 이끌고 13년 동안 중국 천하를 주유하며 뜻이 맞는 군주를 찾았지만 이 역시 좌절되었다.

 

약육강식의 춘추시대에 부국강병으로 천하를 제패하려는 제왕들은 공자의 도덕 정치를 외면했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육경(六經)'을 가르쳤다. 육경에 통달한 제자를 '칠십자(七十子)라고 하고 열 명의 제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한다.

 

공자는 열다섯에 학업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하고자 하는 뜻을 세워 제자 양성을 시작했고, 마흔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쉰에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예순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일흔에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공자는 기원전 479년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은 증자를 상주로 하여 3년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말씀들을 모아서 논어(論語)를 저술했다.

 

공자는 사상적 측면에서 동아시아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인(仁)' 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인(仁)이란, 도덕적, 인본주의적 의미의 '사람다움', 즉,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말한다.

논어의 仁者 愛人('인'은 남을 아끼는 것이다) 사상은 조건없이 남을 챙기고 아끼는 마음이 "사람다움"의 본질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배신 속에서 죽었기에 '남을 챙기고 아끼자. 그래서 사람답게 살자.'는 공자의 외침은 당시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크고 작은 영감을 주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위대한 사상가들'에서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를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아테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크리스트교의 창시자인 예수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평가했다.

 

 

●공자특집 2.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

 

증자(曾子)는 노나라 출신으로 본명은 증삼(曾參)이며 공자의 제자이자 자사의 스승이다. 효경(孝經)과 대학(大學)의 저자이다. 공자보다도 46세 연하이며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를 유학의 적통으로 평가한다.

 

효경은 유가의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의 하나이며 공자와 증자가 효도에 관하여 문답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바탕으로 집안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치국의 근본이라는 내용이다.

 

증자의 스승인 공자의 ‘논어(論語)’를 비롯해 증자의 ‘대학(大學)’, 제자인 자사의 ‘중용(中庸)’, 손제자인 맹자의 ‘맹자(孟子)’를 4서(四書)라고 한다. 송나라 주자가 예기를 대학, 중용 2편으로 편찬하여 논어, 맹자와 더불어 4서에 포함했다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의 경전이고, 대학(大學)은 공자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나타낸 유교의 경전이자 정치 철학이다. 중용(中庸)은 유교의 철학적 배경을 천명한 유교 경전이고, 맹자(孟子)는 맹자가 유세를 하거나 논쟁한 것을 기록한 어록이다.

 

증자(曾子)는 ‘날마다 살펴야 할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남을 위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함께 서로 사귀는 데 있어 신의를 다하였는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서 익혔는가?’라는 삼성오신(三省吾身)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