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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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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고구려-수나라 전쟁

을지문덕 을지문덕(乙支文德)은 평양 출신으로 고구려의 무장이자 대신(大臣)이다. 수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고 출병했다. 수문제는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우중문(于仲文)을 별동대로 조직하여 평양성으로 진군했다. 을지문덕은 혈혈단신 수나라군 진영에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고 적진을 파악한 후에 돌아왔다.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붙잡으려 정예기병으로 추격했으나 붙잡지 못하였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을 희롱하는 오언사구(五言四句)의 한시인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보냈다. 신통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神策究天文)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겨서 쌓은 공적이 높으니(戰勝功旣高) 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면 어떠하랴(知足願云止)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유인작전과 청야전술로 사기가 떨어졌고, 고구려의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철군하던 중에 살수에서 습격을 받아 참패를 당했다. 우중문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투옥 되었으며, 석방된 후 홧병으로 69세에 사망했다. 살수대첩(薩水大捷)은 2차 고구려-수 전쟁 중에 수나라 별동대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의 습격을 받아 궤멸된 전투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강감찬의

[역사 속 전라도] 나주곰탕과 호남의병

전라도는 한반도 서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광주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를 말한다. 전라도는 북쪽으로 금강과 동쪽으로 섬진강과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남해와 서쪽으로 서해와 면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차련 이남, 공주랑 바깥'을 전라도라고 칭한다. 전라도를 김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호남(湖南)이라 한다. 벽골제는 한반도의 인공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하며 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나주(羅州)는 마한의 54개국의 하나로 백제 근초고왕이 정복하고 발라군(發羅郡)이라 하였다.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신라 경덕왕이 금성군(錦城郡)으로 개칭했다. 궁예는 왕건을 파견해 견훤의 후방인 금성군을 점령하고 나주(羅州)로 개칭했다. 왕건이 나주 출신 장화왕후 오 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고려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1018년 고려 현종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全羅道)라고 명명했다. 전라도,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 김천일(金千鎰)은 나주목에서 태어나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업하며 김인후, 유희춘 등과 교유했다. 담양 부사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세계 5대 종교 이슬람교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무함마드는 570년 쿠라이시족 아버지 압둘라가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하여 유복자로 메카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어머니와 8세 때 조부마저 사망하자 가난한 삼촌 탈리브의 보호를 받았다. 무함마드는 부자인 과부 카디자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무역에 종사했다 25세의 무하마드는 40세의 과부 카디자의 청혼을 받아 혼인했다. 무함마드는 경제적 부를 얻어 가난한 삼촌 탈리브의 아들인 알리를 입양했다. 무함마드가 40세 되던 610년 메카 북쪽 교외 자발안누르 산(山) 동굴에서 명상하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무함마드는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고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알라가 유일신임을 주장했다. 무함마드는 메카 지배층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무함마드는 이슬람 공동체를 구성하여 1만 군대를 이끌고 메카를 무혈 정복했다 무함마드는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했고 632년 이별의 순례를 마치고 사망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부인 아이샤의 아버지이다 무함마드의 이별의 순례를 지휘하고 무함마드의 공중예배를 인도했다 정치적 행정적 기능을 이어받아 초대 칼리프가 되었고 아라비아 반도 모두를 손에 넣고 2년 만에 사망했다

고죽 ‘최경창’과 영암 ‘구림마을’

고죽 ‘최경창’은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박순의 문인(門人)으로 문장과 학문에 능통했고 시와 글씨에 뛰어났다.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청백리 ‘최만리’의 5대손이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최수인’의 아들이다. 최경창이 어려서 영암에서 왜구에게 포위되자 퉁소를 구슬프게 불어 왜구들을 향수에 젖게 하여 물리쳤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함경도 북평사에 있을 때 문관으로서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관비(官婢)를 사랑하여 탄핵됐다. 황희, 맹사성, 박수량을 ‘조선의 3대 청백리’ 라고 하며 조선에는 200여 명의 청백리가 있었다. 최경창은 죽어서 이조판서에 추증됐고 청백리로 녹선됐다. 왕명에 따라 청렴하고 결백함이 뛰어난 관리를 청백리로 선정하여 표창했다. 살아있을 때엔 염근리라고 불렀다가 사후에는 청백리로 불렸다. 최경창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이이, 송익필 등과 시를 주고받았고, 정철, 서익 등과 교류했다. 송익필, 이산해 등과 함께 8문장으로 일컬어졌다. 최경창은 백광훈, 이달과 함께 조선의 삼당시인으로 불렀다. 당시 사대부들은 오랫동안 권위와 규범의 논리에 치우치며 현실을 외면하는 시풍을 따랐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