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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서일환의 역사야톡(9) 공자특집 3~4

공자특집3.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공자특집4. 공자의 적통 ‘맹자(孟子)’  

서일환의 역사야톡(9) 공자(孔子)특집 3~4

 

공자특집3.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자사(子思)는 노나라의 유학자로 공자의 손자이자 공리(孔鯉)의 외아들로 공급(孔伋)을 말한다. 증자의 제자이며 맹자의 스승이다. 공자는 아들 공리의 죽음을 시작으로 안회, 자로까지 죽음을 맞이하면서 크게 상심했다.  
 

자사는 3세에 아버지 공리(孔鯉)가 사망하자 할아버지 공자의 손에 양육됐다. 공자가 사망하자 곡부를 떠나지 않고 공자 학단을 이끌던 증자의 제자가 되었다. 증자의 철학은 자사를 통해 맹자에게 이어졌다.  
 
자사는 성(誠)과 중(中)을 기본으로 하는 공자의 말씀을 모은 중용(中庸)의 저자이다. 중용은 예기의 한 부분이나 송나라 때 주자가 중용을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사서(四書)에 포함했다.  
 
주자는 성실함은 하늘의 도요, 성실해지려고 노력함은 사람의 도라고 하였다. 자사가 책을 집필한 이유는 '공자의 뜻이 후대에 가서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라고 서술했다. 유교에서는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를 정통으로 간주한다.  
 
자사는 위(衛)나라의 재상을 지내면서 ‘위나라를 살펴보니 이른바 임금은 임금답지 않고 신하는 신하답지 않다’라며 위나라를 경계했다. 위나라가 멸망하자 노(魯)나라와 송(宋)나라를 주유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펼쳤다.


공자특집4. 공자의 적통 ‘맹자(孟子)’  
 
맹자(孟子)는 춘추전국시대 추(鄒)나라 사람으로 공자가 사망한 지 100년 후쯤에 산둥성 쩌우청에서 태어났다. 노나라로 건너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유학을 후세에 전했다.

 

맹자의 어머니 장(仉)씨는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남겼다. 맹자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 오륜(五倫)을 주장했다 . 
 
맹자는 묵자(墨子)의 겸애설과 양주(楊朱)의 위아설을 극렬히 비판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조건 없이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했다. 양주는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善)이라며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며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천하를 주유했다. 인간의 마음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등 사단(四端)이 구비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민의(民意)를 배반하고 인의(仁義)에 어긋난 은나라 주왕(紂)은 군주가 아니라 평민에 불과하며 주나라의 무왕은 필부(匹夫)인 주왕을 토벌한 것이지 군(君)을 시역(弑逆)한 것은 아니라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주창했다.  
 
맹자(孟子)는 맹자가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하거나, 제자들과 나눈 대화, 다른 사상가들과 논쟁한 것을 기록한 어록이다. 왕도정치와 역성혁명론을 역설하고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남송의 주자가 맹자를 사서의 하나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