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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몽골 특집7~8. 원나라의 쇠퇴와 고려-몽골 전쟁

몽골 특집7. 원나라의 쇠퇴 
 
북원(北元)은 1368년 몽골제국 17대 황제이자 원나라 13대 황제이며 북원의 초대 황제인 혜종이 명나라 주원장에게 쫓겨나서 만리장성 북쪽의 몽골초원에서 재건한 나라이다. 혜종은 오이라트에 살해됐고 기황후는 행방은 알 수 없다.  
 


북원의 2대 소종은 원나라 14대 황제이며 혜종과 기황후의 아들이다. 소종은 명나라군의 다시 외몽골로 쫓겨났다 기황후는 고려인 공녀로 혜종의 궁녀에서 황후가 되어 소종을 낳았다.  
 
북원의 3대 평제는 원나라 15대 황제이며 혜종의 아들이자 소종의 이복동생으로 1635년 조리그투칸과 오이라트에 살해됐다. 북원의 장수들이 명나라에 투항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원나라가 몽골초원으로 쫓기 나자 조리그투칸이 몽골제국 18대 대칸으로 즉위하여 국호 대원(大元)을 폐지했다. 몽골제국 마지막 황제인 39대 링단칸이 티베트로 가려던 중 급사했다. 1634년 황족들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하여 멸망했다.  
 
모굴리스탄칸국은 1347년 차가타이칸국에서 독립하여 1706년까지 중앙아시아 동부에 성립된 몽골계 국가이다. 모굴인이 중심이 되어 모굴칸국이라 한다. 오이라트 출신의 인류 역사 최후의 유목제국인 준가르에 멸망했다.  
 
오이라트는 서몽골 삼림지대에서 발흥한 튀르크계 부족으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에 편입됐다. 원나라 쿠빌라이칸에 반기를 들었고 명나라 영락제의 북벌을 막아냈다. 원나라 13대 혜제가 북원(北元)을 세우자 북원을 통치하며 재흥했다.  
 
오이라트의 군주 에센이 몽골초원의 패자가 되어 명나라 정통제를 포로로 사로잡는 토목보의 변을 일으켰다. 토목보의 변은 영가의 난, 정강의 변과 함께 한족의 치욕으로 손꼽힌다. 오이라트는 에센이 대칸에 올랐으나 부하 족장에 살해되어 쇠퇴했다.  
 
티무르제국은 1370년 차가타이칸국 출신의 티무르가 칭기즈칸 후손을 자처하며 중앙아시아 지역에 건국한 이슬람 왕조이다. 차가타이칸국과  일한국을 병합하고 명나라 원정 도중 사망했다. 1507년 우즈베크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몽골 특집8. 고려-몽골 전쟁 
 


고려-몽골 전쟁은 1231년부터 1257년까지 고려왕 몽골제국의 전쟁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하여 금나라를 정복했다. 몽골 사신 저고여가 국경지대에서 살해되자 2대 오고타이칸이 고려와 전쟁을 시작했다.  
 
1차 침략은 살리타이가 고려가 화의를 요청하자 다루가치를 설치하고 철수했다.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했다. 2차 침략은 살리타이가 살해되자 철수했고 고려대장경이 소실됐다. 3차 침략은 당올태이 고려가 항복하자 철수했고 황룡사가 파괴됐다.  
 
2대 오고타이칸이 사망하고 3대 귀위크칸이 즉위했다. 4차 침략은 아모간이 국왕의 입조를 요구하며 몽골에 귀화한 고려인 홍복원을 앞세워 침략했고, 3대 귀위크칸이 사망하자 철수했다.  
 
4대 몽케칸이 즉위하고 고종의 친조와 개경 환도를 요구했다. 5차 침략은 예케에게 고려가 항복 의사를 밝히자 철수했다. 지랄타이는 6차 침략, 7차 침략, 8차 침략, 9차 침략을 계속 침략했고 고려가 항복하자 철수하던 중에 사망했다.  
 
고려 23대 고종의 태자 왕전(王倎)이 몽골제국의 4대 몽케칸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던 길에 몽케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4대 몽케칸이 사망하자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 사이에 툴루이 내전이 일어났다.  
 
왕전 일행은 원나라는 황제 자리를 두고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가 경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왕전 일행은 쿠빌라이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남행하던 왕전 일행과 북상하던 쿠빌라이 일행과 후베이성 정저우에서 조우했다.  
 
쿠빌라이는 '고려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이고, 당태종이 친히 정벌하였으나 굴복시키지 못하였는데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스스로 나에게 귀부해오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라며 칭찬했다.  
 
태자 왕전이 쿠빌라이를 지원하여 5대 쿠빌라이칸이 즉위하여 고려-몽골전쟁이 끝났다. 쿠빌라이는 고종이 사망하자 태자 왕전을 24대 원종으로 즉위토록 도와주고 고려의 주권과 풍속에 간섭하지 않는다 불개토풍(不改土風)을 발표했다.  
 
원종은 즉위하여 원나라에 복속을 표시했고 쿠빌라이의 도움을 받아 무신정권을 붕괴하고 개경으로 환도했다. 무신들이 개경환도에 반대하며 진도를 중심으로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다. 여몽연합군에 삼별초가 전멸됐다.  
 
쿠빌라이는 원종의 아들인 충렬왕에게 자신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를 시집보내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았다. 부원파들이 고려를 원나라의 하나의 지방으로 만들자는 입성책동(立省策動)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