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선진 편에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지하 중에 누가 더 어집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답하였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되묻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자장은 기상이 활달하고 생활이 진보적이지만 자하는 만사에 조심하고, 현실에 충실 하려는 퍽 대조적인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흔히 회자되는 과유불급을 설명하는 말이다. 공자의 과유불급은 두 사람을 비유로 들었을 뿐 세상 모든 일을 말한 것이다. 어쩌면 역사를 두고 온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가 아니었던가 한다. 오늘날 심각하게 대립된 진보와 보수이념도 어떤 사안에 대해 어디까지가 개혁이고, 보수인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중매체나 선동가들의 주장과 아전인수식 해석에 주체성이 없이 부화뇌동하거나, 맹종하여 혼란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회현실이나 개인의 모든 삶에서 귀착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행위의 미치고 미치지 못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평가하여야 할 것인가? 그것을 잘 조절하고 치우침이 없는 것이 바로 중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용마저도 영원불변의 것은 아
을지문덕 을지문덕(乙支文德)은 평양 출신으로 고구려의 무장이자 대신(大臣)이다. 수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고 출병했다. 수문제는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우중문(于仲文)을 별동대로 조직하여 평양성으로 진군했다. 을지문덕은 혈혈단신 수나라군 진영에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고 적진을 파악한 후에 돌아왔다.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붙잡으려 정예기병으로 추격했으나 붙잡지 못하였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을 희롱하는 오언사구(五言四句)의 한시인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보냈다. 신통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神策究天文)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겨서 쌓은 공적이 높으니(戰勝功旣高) 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면 어떠하랴(知足願云止)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유인작전과 청야전술로 사기가 떨어졌고, 고구려의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철군하던 중에 살수에서 습격을 받아 참패를 당했다. 우중문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투옥 되었으며, 석방된 후 홧병으로 69세에 사망했다. 살수대첩(薩水大捷)은 2차 고구려-수 전쟁 중에 수나라 별동대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의 습격을 받아 궤멸된 전투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강감찬의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로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지천명에 들어선 어느 날 한 분과 진한 포옹을 하며 흘렸던 눈물이 기억이 났다. 기억과 함께 그분 가슴의 그리움을 알아차리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 깊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그분과의 가슴 따뜻한 추억을 그리움으로 찾아 나섰다.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게 되면서 상경하게 되었다. 시골집에서 서울까지는 직행버스에서 고속버스로 환승을 하며 꼬박 5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여학생 혼자 사는 것이 걱정되었던 부모님의 권유로 오빠 신혼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상경 후 반년이 지나고 처음 맞게 된 한가위 추석 명절 낯선 서울에 홀로 남게 되었다. 보름달 속에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파랗게 싹이 나던 보리밭 사잇길이 그곳에 있었다. 검정 교복 치마가 팔랑거리듯 나풀거리고 보라색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페달 밟던 자전거도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계셨고, 부모님이 계셨으며 친구들이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았던 별들과 황금빛 보름달은 그렇게 내 가슴에 내려와 함께 울어주었다. 세월은 그렇게 기억들과 추억들을 쌍으로 업은 채 나에게서 잊혀갔다. 그러던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Startup Issue & Trend」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핵심 이슈와 트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CES 2024 혁신상을 수상한 스타트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CES 2024 지난 1월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Consumer Electonics Show)2024'가 개최되었다. CES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로 스타트업에게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 투자유치 및 판로개척을 위한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은 K-Startup 통합관을 구축하여 국내 스타트업의 전시회 참여를 지원하고,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필요한 해외 투자유치 및 진출 교육, 투자자-바이어 매칭 등을 전방위적으로 제공했다. 올해 CES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국내 벤처-창업기업 128개사가 CES 혁신상을 수상해, 역대 최다 수상을 기록한 것이다. CES 혁신상은 박람회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세계를 선도할 혁신 기술과 제품에 수여하는 상으로, 'CES 최고의 영예'로 불린다. 올해는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 스마트시티,
아직 찬바람이 일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른 봄이지만, 고색이 창연한 필암서원 확연루(廓然樓) 주위의 매화 고목등걸에서는 오랜 연륜을 자랑하듯, 듬성듬성 백매, 홍매(紅梅)가 북풍한설을 이겨낸 결기를 자랑하듯 피어나고 있다. 매향(梅香)은 아득하여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심향(心香)으로 스며들어 그 고고함을 느끼게 한다. 청절당에서는 도포 입 은 선비들의 강독 소리가 상기도 청아하게 들리는 듯한데, 동재에서는 선비문화의 강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근 장성군이 필암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2022년도부터 100억여 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필암서원 선비문화 세계화 사업추진'이라는 비전하에 '필암서원을 한국의 선비문화의 본향으로 삼아 세계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문정공 하서 김인후(文正公 河西 金麟厚) 선생을 모신 필암서원과 묘소, 신도비, 통곡단, 어사리 등 하서와 관련된 모든 유무형의 유적을 재발굴 조명하고 디지털화하여 후세에 선비문화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개무량하였다. 하서 김인후는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학문적 소양을 갖춘 성군인 정조대왕(正祖大王)이 도학절의문장(道學節義文章)의 해동 제일인자라고 극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년∼1715년)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로,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자이다. ‘자산어보’를 남긴 손암 정약전, 1801년 신유박해때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부가 된다. 정재원(1730~1792,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의 아버지)의 둘째부인이 공재 윤두서의 손녀 윤소온이다. 태어나는 순간 당파가 정해지던 조선 후기에 태어났으니 윤두서 역시 당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해남 윤씨 가문은 대대로 동인과 남인에 속했다. 윤선도의 조부인 윤의중은 종2품 대사헌을, 생부인 윤유심은 종3품 예빈시부정을, 양부인 윤유기는 종2품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시인이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힘없이 표현했던 격정적 정치인, 고산 윤선도는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당쟁에 휘말려 20여 년 동안 유배생활을 전전한다. 남인(南人)에 속했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 역시 정치적 좌절을 겪는다. 서인(西人)이 여당이던 시절이 많았으므로 윤두서의 조부인 윤인미, 양부 윤이석, 생부 윤이후, 친형 윤종서 윤흥서 윤창서 등도 고위 벼슬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친형 윤종서는 당시
나는 여섯 살 무렵이었던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부모의 곁을 떠나 할머니와 OO광역시 지원동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만 4년을 살았고 국민학교(그 당시 초등학교의 명칭) 3학년 반 배정까지 받은 상태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2학년 겨울 방학을 보내던 중에 가게 된 전학이었기에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하지도 못한 채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된 내 생애 첫 번째 긴 이별이었다. 나는 OO광역시 모 국민학교에 1학년 1반으로 입학을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 밑에서 다니는 학교생활이었지만, 나는 할머니 손에서 다니게 되었다.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 첫 담임 선생님은 아버지 연배의 남자 선생님이셨다. 마른 체형에 키가 크셨고 대머리에 항상 베레모를 착용하고 다니셨다. 숫기가 없고 말이 없던 나는 그저 누가 무엇이라 말하면 웃기만 한 아이였다.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 역시 나에 대한 이미지를 떠 올릴 때면, "늘 웃으며 말이 없고, 듣기만 하는 친구"로 그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복도 청소를 하는 어느 날이었다. 복도는 나무로 된 바닥재였으며, 우리는 초를 칠하고 걸레로 닦으며 신나게 미는 데 열중하였다. 복도 끝에서 부터 끝까지 두 팔로
불교(佛敎)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 샤카족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 고타마’가 브라만교의 카스트제도를 대신하여 불교를 창시했다.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우리나라 최초로 불상(佛像)과 불경(佛經)을 전래했다. 384년 백제 침류왕 때 인도(印度)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을 거쳐 불법(佛法)과 불도(佛道)를 전했다. 527년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인해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공인했다. ◆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 법성포와 불갑사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法聖浦)는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이며,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이다. 불갑사(佛甲寺)는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도래하여 최초로 지은 사찰로 부처의 불(佛)자와 첫째 갑(甲)자를 따서 명명했다. 보물 제830호 불갑사 대웅전, 천연기념물 제112호 불갑사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상사화(相思花)가 유명하다. 법성포는 법성포 굴비의 본고장으로 굴비는 이자겸이 유배와서 ‘비굴하지 않겠다’며 조기를 진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태고종 총림 선암사 송광사(松廣寺)는 순천시 조계산 서쪽 기슭에 선
나는 1남 1녀를 두었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되 면 하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라면 끓이는 것과 계란 프라이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줄 수 없으니 직접 해서 먹으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종 종 주변 엄마들에게서 들어보면 불이 무 섭기 때문에 자신들은 직접 해서 먹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리 들을 때마 다 '나에겐 나쁜 계모 기질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나는 가르쳤다. 일과 육아를 둘 다 책임지고 있는 워 킹 맘이었으니.... 그 당시 남편들에게 육아나 가사에 그다지 도움받으며 살 던 시대가 아니어서 더 더욱 그러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들이 취사병으로 보직을 받아 군 복무 잘하고 전역을 하였다. 그 뒤로 못하는 음식이 없었다. 엄마인 나도 엄두 내지 못하는 한식, 양식들도 곧잘 해서 내어 오곤 하였다. 그래서 함께 하는 동안 자주 먹을 수 있을 것 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들도 바빠지고 가족들도 바빠지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아들이 결혼식을 앞두던 마지막 여름. 가족들을 위하여 삼계탕 을 끓여내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전라도는 한반도 서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광주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를 말한다. 전라도는 북쪽으로 금강과 동쪽으로 섬진강과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남해와 서쪽으로 서해와 면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차련 이남, 공주랑 바깥'을 전라도라고 칭한다. 전라도를 김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호남(湖南)이라 한다. 벽골제는 한반도의 인공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하며 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나주(羅州)는 마한의 54개국의 하나로 백제 근초고왕이 정복하고 발라군(發羅郡)이라 하였다.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신라 경덕왕이 금성군(錦城郡)으로 개칭했다. 궁예는 왕건을 파견해 견훤의 후방인 금성군을 점령하고 나주(羅州)로 개칭했다. 왕건이 나주 출신 장화왕후 오 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고려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1018년 고려 현종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全羅道)라고 명명했다. 전라도,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 김천일(金千鎰)은 나주목에서 태어나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업하며 김인후, 유희춘 등과 교유했다. 담양 부사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Startup Issue & Trend」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핵심 이슈와 트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류운송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물류산업 관련 정부의 정책 방향 등을 살펴보고, 해당 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을 알아보겠습니다. 물류·운송 산업의 디지털 전환 요즘은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식품, 의류, 생필품, 화장품,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거래하는 시대다. 이러한 경향은 IT기술의 발달, 1인 가구 증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문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더욱 세분화된 품목과 전문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판매자들은 고객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과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필연적으로 스마트한 물류·운송 산업에 대한 니즈 역시 증가해 왔다. 물류·운송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주문배송시설을 200개 이상 확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편리한 일상과 신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첨단 물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생활 밀착형 도시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역 간 격차 없는 물류 서비스 기반을 제공할 예정
이낙연 전 대표가 11일(목) 오후 2시 민주당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전진숙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은 민주당에서 많은 혜택을 누린 정치 지도자로서 해선 안 될 행위를 한 것이다”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전진숙 후보는 “정치 지도자의 길은 품위와 기품이 있어야 한다며 이 전 대표는 평소에 신중함과 기품있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지금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당 대표와 민주당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 지도자로서 다른 탈당 정치인과 달라야 했다. 다른 정치인들이야 자신들의 정지적 유불리에 따라 탈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평소에 민주당이 자신의 ‘정신의 집’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런 모든 발언들이 허언이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한국 정치의 혁신과 변화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자명하다.전진숙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 선택은 “총선에서 보수정권을 돕는 행위로 윤석열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인 총선을 민주당 심판 선거로 전환하려는 국민의힘을 전략에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 지적했다. 전진숙 후보는 “더욱 심각한 것은 이낙연 전 대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