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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조선의 시인 3-4, 월산대군과 정약용

 조선의 시인3 월산대군
 
有所思(그리움) / 월산대군(月山大君)  
 
朝亦有所思 暮亦有所思 (조역유소사 모역유소사)
所思在何處 千里路無涯 (소사재하처 천리로무애)
風潮望難越 雲雁托無期 (풍조망난월 운안탁무기)
欲寄音情久 中心難如絲 (욕기음정구 중심난여사)  
 
아침에도 그리운 사람 저녁에도 또 그리운 님
사랑하는 님 어디 계시나 천릿길 아득히 먼 곳
풍랑으로 건널 수 없고 구름 속 기러기라 소식 못 전해
오랜 사랑 전하고 싶지만 내 마음은 엉크러진 실타래라네  
 
월산대군은 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손자이며 의경세자와 인수대비의 아들이다. 8대 예종의 조카이고 9대 성종의 동복형이다. 월산대군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시와 문장이 뛰어났고 성품이 강직하고 술과 풍류를 즐겼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장손으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의경세자로 책봉됐다. 세조가 사망하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즉위하여 14개월 만에 사망했다. 예종의 적장자 제안대군과 의경세자의 적장자 월산대군을 대신하여 성종이 즉위했다.  
 
월산대군은 정희왕후 인수대비 한명회 등의 농간으로 성종에게 권좌를 빼앗겼다. 한명회는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종의 즉위에 공헌했다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봉되어 동생의 신하가 되었다.  
 
태조의 적장손인 양녕대군과 세조의 적장손인 월산대군은 왕이 되지 못한 불운한 왕족이다. 월산대군은 망원정(望遠亭)에서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다가 3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성종이 시호 효문(孝文)을 내렸다. 

 


조선시인  정 약 용(丁若鏞)  
 
애절양(哀絶陽) / 정악용(丁若鏞)  
 
蘆田少婦哭聲長 (노전소부곡성장)
哭向縣門號穹蒼 (곡향현문호궁창)
夫征不復尙可有 (부정불복상가유)
自古未聞男絶陽 (자고미문남절양)  
 
노전마을 젊은 아낙 통곡 소리 그칠 줄 모르고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豪家終歲奏管弦 (호가종세주관현)
粒米寸帛無所捐 (입미촌백무소연)
均吾赤子何厚薄 (균오적자하후박)
客窓重誦䲩鳩篇 (객창중송시구편)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이나 즐기면서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같은 백성인데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애절양은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지은 시이다. 삼정 문란으로 삼년상마저 지난 시아버지와 배냇물도 안 마른 갓난아이까지 군적에 올라 군포를 내야 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는 현실을 비판했다. 
 
정재원은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을 낳았다.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사위 황사영은 순교했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자산어보를 남기고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약종은 부인 유소사, 아들 정철상과 정하상, 딸 정정혜와 함께 순교했다.  
 
정약용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태어났다. 중과시에 이어 대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암행어사와 형조참의를 역임했다. 신유박해로 강진으로 유배되어 19년 만에 해배됐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깨끗한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 등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책으로 밝히고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탄생 250주년은 해에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