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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은 환영적 우월감(illusory superiority)에서 벗어나야 한다(上)

이낙연은 호남인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
이낙연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라! 
이낙연은 먹었던 우물에 침을 뱉지 말라!
이낙연은 이제 정치계에서 은퇴를 하기 바란다!

   이낙연는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전라남도 지사, 국무총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양한 공적 직책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직책을 맡은 자이기에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전라남도 지사, 전 국무총리,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등의 칭호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낙연의 그동안의 여러 조직들을 거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 및 행적을 보면 그 어느 직함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는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을 할 때 신문 지상에 알려진 사건들을 파악해 보면 뚜렷한 실적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주관적인 기술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제시하니, 이낙연이 어떤 능력을 갖춘 정치인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첫째는 이낙연이 전 동아일보 기자일 때 전두환 찬양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이의 발단은 ‘서울의 봄’ 계기로 회자되는 ‘전두환 찬양’ 기사이다. 이낙연은 1979년 신문사에 입사했고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이 됐다. 비슷한 시기 한 사람은 동아일보에, 또 한 사람은 청와대에 둥지를 튼 셈이다. ‘전두환 찬양’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이낙연 기자’의 과거 기사를 확인해 봤다. ‘전두환 찬양 기사’는 1983년에 나왔다. 


격려사에 나선 권익현 사무총장은 ‘이 나라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우리 당 총재 출생지인 이곳에서 평생 동지들이 모여 정기 위원회(개편대회)를 갖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이 지역을 모범 지구당으로 만드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 (동아일보 1983.1.26.)


기사를 보면 전두환을 ‘위대한 영도자’라고 한 사람은 당시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이다. ‘이낙연 기자’는 그 말을 옮겼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하고 꺼림칙하다. ‘위대한 영도자’라는 말을 여과 없이 인용해 독자들에게 내보낸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심지어 조선일보도 권익현의 발언에서 ‘위대한 영도자’란 말은 뺐다.


권익현 사무총장은 경남합천지구당(위원장 유상호) 개편대회에서 “우리 당 총재인 전두환 대통령의 출신지인 이곳을 모범지구당으로 만드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 (1983.1.26. 조선일보) ‘이낙연 기자’가 전두환에 대해 영도자는 아니지만 영도라는 말을 쓴 적은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5개월쯤 뒤에 쓴 <호혜 재확인한 ‘건강한 맹방’>이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전두환의 방미 성과를 정리하고 있다. 프레스클럽 회견은 시간 관계로 당초 예정보다 단축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전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자신과 자신이 영도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세계 여론을 향해 내보인 적극적 자세로 해석된다. (1981.2.5. 동아일보) ‘이낙연 기자’가 전두환에 대해 영도자는 아니지만 영도라는 말을 쓴 적은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5개월쯤 뒤에 쓴 <호혜 재확인한 ‘건강한 맹방’>이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전두환의 방미 성과를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전두환 때는 ‘영도자’라는 말을 하는 아부꾼과 기회주의자들이 많았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를 하고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그 과거를 알 필요가 있다.(이승호 에디터, 2023.12.12) 

 

   둘째는 이낙연이 전 국회의원일 때의 활동 실적을 보자. 먼저 이낙연은 국회의원 시절(2000.04.07~2014.05.15)에는 특별한 업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낙연은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안이 나왔을 때 노무현대통령 탄핵을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관심이 있었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안에 가결에 찬성했나 반대했냐는 질문에 이낙연은 3월17일 “노코멘트”라고 했고, 3월 18일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예, 반대했습니다”라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이낙연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20년 1월에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후 그해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서울 종로구 후보로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5선 국회의원(2020.05.30~2021.09.15.)이 되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하여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석 1명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낙연은 정부 여당 당대표 중에서 선거를 한 번도 지휘하지 않고 당대표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자진 사퇴하고 국회의원까지 자진 사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셋째는 이낙연이 전 전라남도 지사일 때의 활동 실적을 보자. 이낙연은 제37대 전라남도 지사(2014.07.01~2017.05.12)가 되었다. 도지사 역임 시절에는 크게 몇 가지 뒷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하나는 이낙연 전남지사 전 비서관이 당비 대납 사건으로 실형선고(노컷뉴스, 2014.07.02)을 받기도 하고, 둘째는, 이낙연 지사 시절 전라남도는, 청렴도 역대 ‘최악’... ‘작년(2015) 16위, 올해(2016)는 꼴찌’ (이뉴스투데이, 2016.12.07)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셋째는 이낙연 총리 후보는, ‘당비 대납’ 전과자들 전남도 요직에 앉혀(이투데이, 2017.05.19)라는 기사를 보더라도 전과자들을 전라남도 요직에 배치한 것은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2017년 2월~4월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긍정평가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뒤를 이은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공약이행율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민선 6기 전국 시·도지사 및 교육감 공약 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 대한 최종결과에서 이 지사는 공약 이행 종합 평가 결과 55점 이상인 B 등급을 받는 데 그쳤다고 한다. 또한 민선 6기 매니페스토 중간 평가에서는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와 함께 최하점을 받으며, 민주당 텃밭에서 최하점을 받는 굴욕을 당했다. 심지어 광주광역시장 윤장현도 최하점을 받은 일이 없었다.

 

   넷째는 이낙연이 전 국무총리일 때의 활동 실적으로 보자. 이낙연은 전남지사 재임 중에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로 내정되었다. 그는 어떻게 현정부의 총리가 되었을까? 문재인 대통령 당선 당시만해도 이낙연은 차기 대권에서 존재조차 없었던 사람이었다. 국회의원 4선에 전남지사까지 한 정치경력 치곤 참 존재감도 별로고.. 뭐 한게 없었다(Cliean, 2021.07.23.),

 

그렇지만 호남 출신이라는 요인도 있어서 탕평인사 차원에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2017년 4월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라남도지사 선거 당시 보좌진 등 측근들이 '당비 대납' 사건으로 처벌된 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충분히 챙기지 못한 불찰이 크다"고 말했다(한경, 2007.05.25). 이어서 이낙연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2020.08.29~2021.03.19)가 되었다. 결국 이낙연은 2017년 5월 31일에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국무총리로 2020년 1월 13일까지 958일 동안 재임하며 제6공화국 최장기간 재임 국무총리로 기록되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강화와 함께 이번 인사에서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영향력 강화다. 윤 수석은 “홍 후보자는 정부 출범 이후 70여 차례 지속된 이 총리의 (대통령) 주례 보고에 배석해 누구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인사에) 이 총리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관 인선에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어느 정권에서보다 이낙연 총리는 존재감이 더 커진 ‘책임 총리’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기억나는 사건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 전 반대 의견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냐는 질문에 “확인해드리기 어렵다” (SBS 현장 영상, 2019.09.26)고 하였다. 이는 후일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발언에서 “이낙연은 조국을 친 사람이야”에서 그의 본심을 간접적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그 밖의 특별한 업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 TV) 


2024년1월3일 하편을 게재함 

이상수/컬럼리스트

 
<참고자료>  
1) https://joma80.tistory.com/16521963
2) https://cafe.daum.net/10in10/Evug/19531?
3) https://namu.wiki/w/이낙연비판및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