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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過猶不及)을 다시 음미하며

   논어 선진 편에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지하 중에 누가 더 어집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답하였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되묻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자장은 기상이 활달하고 생활이 진보적이지만 자하는 만사에 조심하고, 현실에 충실 하려는 퍽 대조적인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흔히 회자되는 과유불급을 설명하는 말이다. 공자의 과유불급은 두 사람을 비유로 들었을 뿐 세상 모든 일을 말한 것이다. 

 

어쩌면 역사를 두고 온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가 아니었던가 한다. 

 

오늘날 심각하게 대립된 진보와 보수이념도 어떤 사안에 대해 어디까지가 개혁이고, 보수인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중매체나 선동가들의 주장과 아전인수식 해석에 주체성이 없이 부화뇌동하거나, 맹종하여 혼란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회현실이나 개인의 모든 삶에서 귀착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행위의 미치고 미치지 못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평가하여야 할 것인가? 그것을 잘 조절하고 치우침이 없는 것이 바로 중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용마저도 영원불변의 것은 아니다. 이것만이 절대 진리요, 저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 같은 성인도 천하를 움직일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만은 취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혁신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에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지 않을 때가 있었는가?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는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쉽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변화란 일정 부분 자기희생과 모험, 불안의식을 동반하기 마련이며 때로는 전보다 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거의 살아온 경험칙과 관습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개혁하기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된 개혁을 이루어 갈 것인가? 변화에는 더 많은 자기희생과 양보와 관용이 요구됨을 인식시켜, 우선 각자가 삶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며, 제도적인 지원이 부수되어야 한다. 

 

오늘날 지식정보화사회에 있어 세계화, 경쟁의 심화, 정보화, 민주화, 서비스의 기대수준 및 복지 수요의 증가로 국민이나 수요자가 요구하는 투명하고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이 절실해지고 있음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변화의 당위성과 시대적 불가피성을 인식하도록 하여 우선 각자가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위에 자신의 생활 태도를 바꾸고, 맡은 업무를 중심으로 행동화해 가야 한다. 


이제는 막연하게 제도, 형식에 안주하기 보다는 업무추진에 능동적인 창의성을 발휘하고, 비리의 근절에 칼날같이 엄정하되, 지나치게 사소한 규정 등에 얽매여 자율성이나 합리성을 저해하여, 오히려 선진화를 가로막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과유불급과 중용의 지혜를 되새겨 보는 소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