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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서일환의 역사야톡(11화) 공자(孔子)특집 7~8

공자특집7. 공문십철의 염경, 염옹, 염구
공자특집8. 공문십철의 재아, 자공, 자유, 자하

서일환의 역사야톡(11화) 공자(孔子)특집 7~8


공자특집7. 공문십철의 염경, 염옹, 염구
 

<염백우/염경(冉耕)>

염백우(冉伯牛)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백우(伯牛)이고 ‘염백우(冉伯牛)’ 혹은 ‘염자(冉子)’도 불린다. 염백우는 염옹(冉雍), 염구(冉求)와 형제이며 장남이다. 염씨 삼형제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격려를 받으며, 학문적으로 성공하여 공문십철이 되어 일문삼현(一門三賢)으로 불린다.

염백우(염경)은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덕행(德行)으로 안연(안회), 민자건(민손), 중궁(염옹)과 더불어 유명했는데 사람됨이 단정하고 정의로워 공자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했다. 염백우가 공자와 함께 노나라에 돌아와서 악질(惡疾)에 걸렸다. 그가 병을 앓을 때 병문안을 온 공자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를 망쳤구나, 숙명이로다! 이런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라고 장탄식을 하며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공자보다 먼저 사망했다.
 
<염옹/중궁)
중궁(仲弓)은 노나라 사람으로 염옹(冉雍)이라 한다. 공자의 제자이자 염백우의 동생이며 염구의 형이다. 구변은 없었지만 공자로부터 ‘임금을 시킬 만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어질고 덕망 있는 인물이다.  
 
공자는 염옹에게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다면, 비록 쓰려고 하지 않아도 산천의 신이 어찌 버리겠는가(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라고 하였다.  
 
<염구/자유>
염구(冉求)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유(子有)를 말한다. 공자의 제자이자 염백우, 염옹의 동생이다. 유능한 행정가로 화술에도 능란하여 공자의 추천으로 노나라의 실세였던 계씨가의 가신이 되었다.  
 
염구는 공자의 가르침보다 계씨(季氏)가의 정책을 추진하여 공자의 미움을 받았다. 염구는 행정과 군사에 재능이 뛰어났지만 계씨가의 횡포를 막지 않고 현실에 타협하여 오랫동안 권력을 누렸다.

공자특집8. 공문십철의 재아, 자공, 자유, 자하 
 

 

공자특집8. 공문십철의 재아, 자공, 자유, 자하


<재아/재여>
재아(宰我)는 재아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재여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삼년상은 너무 길다며 일년상을 주장했다. 제(濟)나라의 임묘대부(臨苗大夫)가 되었으나 전상(田常)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일족이 몰살을 당했다.  
 
변론의 달인으로 실지를 추구하여 공자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받았다. 공자는 낮잠을 자는 재여를 보고 "썩은 나무에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는 담을 쌓을 수도 없다. 내가 재여를 뭐하러 꾸짖겠는가?"라고 하였다.  
 
<자공/단목사>
자공(子貢)은 위나라의 유학자로 단목 사(端木 賜)를 말한다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재산이 많았으며, 전국을 주유할 때 물질적으로 후원을 하였다. 의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고 그 이익으로 세상을 구한 이리제세(以利濟世)로 평가한다.  자공은 공자가 사망하자 무덤에서 6년을 보내면서 수행했다. 자공은 ‘노나라를 보존하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가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가 패자가 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자유/언언>
자유(子游)는 공자의 72명의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강남의 오나라 출신으로 언언(言偃)을 말한다. 공자가 사망하자 강남으로 돌아가서 유학을 전파했다.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고 예악(禮樂) 방면에도 식견이 깊었다.  
 
자유는 노나라 무성읍의 책임자가 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임금을 섬기면서 너무 자주 간언하면 오히려 욕을 당하고, 벗을 사귀면서 자주 충고하면 오히려 소원해진다’고 말했다.  
 
<자하/복상>
자하(子夏)는 노나라 사람으로 복상(卜商)을 말한다 자하는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춘추에 능했고 문학에 뛰어났다. 자하는 군자는 농사 의슬 등 작은 예절을 배워야 큰 도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다. 예를 중시하여 순자에게로 계승됐다.  
 
자하는 “벗과 사귈 때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배움이 없다고 이르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자라고 여길 것이다”고 말했다. 주역을 주석한 자하역전(子夏易傳)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