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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우리 민족의 전쟁 1~2화

1. 고구려와 위나라의 여-위 전쟁
2. 고구려와 수나라의 여-수 전쟁

우리 민족의 전쟁 1~2화

 

우리 민족의 전쟁1.

고구려와 위나라의 여-위 전쟁 
 
고구려-위나라 전쟁은 242년부터 259년까지 네 차례의 고구려와 위나라의 전쟁을 말한다. 고구려는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한사군을 축출하고 부여, 동예, 옥저 등을 복속하여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지배했다.  
 

고구려 10대 산상왕은 8대 신대왕의 아들이며 9대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고국천왕의 왕비이자 형수인 우씨와 모의하여 즉위했고, 형사취수제로 형수를 부인으로 삼았다. 아들을 태자로 삼아 형제상속을 부자상속으로 바꾸고 환도성으로 천도했다.  
 
11대 동천왕은 10대 산상왕의 아들로 위나라 2대 조예(曹叡)와 함께 요동 지역에서 할거하던 공손씨(公孫氏) 세력을 정벌했다. 동천왕은 공손씨 세력이 무너지자 위나라를 기습 공격하자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역공했다.  
 
고구려는 위나라와 3차례의 전쟁으로 수많은 군사와 백성을 잃었으며 수도 환도성이 함락당하고, 동천왕은 남옥저에 이어 북옥저로 피신했다. 환도성은 평지성인 국내성과 함께 축성한 산성이다.
 
조조가 헌제를 후한의 황제로 옹립하고 삼분 천하의 삼국시대를 열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건국하여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조조는 무황제로 추존됐고 초대 조비는 조조의 차남으로 위를 건국하여 오와 촉과 대항했다. 2대 조예는 조조의 손자이자 조비의 아들로 요절했다. 3대 조방은 조비의 양손자로 8세에 황제가 되어 고평릉의 변으로 사마의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4대 조모는 조비의 손자이자 조예의 이복동생으로 14세에 황제로 즉위하여 사마소에게 시해됐다. 5대 조환은 조비의 손자로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사마염에게 양위하고 위나라가 멸망했다. 

 

 

우리 민족의 전쟁2.

고구려와 수나라의 여-수 전쟁
 
고구려-수나라 전쟁은 598년부터 614년까지 벌어진 고구려 영양왕과 수나라 수문제, 수양제와의 전쟁을 말한다. 수나라가 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통일했고, 몽골고원에서 유목 생활하던 돌궐족이 발흥했다.  
 
고구려는 돌궐족과 연합하여 수나라에 대항했고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에 대립했다. 신라는 왜국과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에 대항했다. 고구려 26대 영양왕이 수나라에 화친을 요구했으나 거절하자 공격하여 여-수 전쟁이 시작됐다.

 

1차 여-수 전쟁은 598년 수문제의 5남 양량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다. 고구려 강이식이 임유관 전투에서 승리했고, 영양왕이 요동 분토(糞土)의 신하로 칭하는 표문을 올리자 후퇴했다.  
 
2차 여-수 전쟁은 612년 수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전쟁이다. 주력군은 요동성으로 진격했고 해군은 평양성에 상륙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크게 승리하자 수나라는 철수했다.  
 

 

3차 여-수 전쟁은 613년 다시 수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고구려 고건무가 요동성에서 방어했다. 수나라 후방에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수나라는 철수했다. 양현감은 반란이 실패하자 자살했고 낙양 거리에 효수됐다.  
 
4차 여-수 전쟁은 614년 또다시 수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고 비사성을 함락하고 고구려 내륙을 침략했다. 고구려는 3차 여-수 전쟁 당시 고구려에 투항한 곡사정을 수나라에 돌려주고 휴전 협상을 전개하여 수나라가 철수했다.  
 
수양제는 고구려 정복에 실패하고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몸소 작은 나라를 쳐도 승리하지 못하니 이는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4차례에 걸친 여-수 전쟁으로 수나라는 재정이 파탄 나서 5년 뒤에 멸망했다.
 
수나라는 수문제의 개황의 치(開皇之治)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에 걸친 고구려 4차례 침략이 모두 실패하고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3대 수공제가 선비족 이연에게 양위하여 3대 39년 만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