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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 이백(李白)
봄날(春望) / 두보(杜甫)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당나라의 시인1. 이백 
이백(李白) 은 자가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은 정치적 큰 이상을 갖고 있었으나 꿈이었을 뿐 끝내 이룰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크게 기뻐하며 장안으로 향하였던 그였으나, 실망한 나머지 장안을 떠나 두루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빠짐없이 찾았다.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체득한 진리를 시로 표현하였다. 
망여산폭포를 예로 든다.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 이백(李白)  
日照香爐生紫烟,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향로봉에 햇살 들어 불그레 안개 피어나는데
멀리 바라 보니 어허 폭포가 앞 내에 걸려 있네
날아 흘러 곧바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구만리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졌나?  
 

루산(廬山)은 중국 장시성 주장시와 난창시 있는 명산으로 최고봉은 한양봉(汉阳峰)으로 해발 1,474m이다.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운무에 둘러싸여 있으며, 국가중점 풍경명승구와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루산은 사마천이 입산하여 사기를 집필했고, 동진의 왕희지가 별장을 짓고 기거했고, 혜원(慧遠)이 정토종을 개창했고, 도연명이 입산하여 시조를 남겼다. 백거이, 이백, 구양수, 주돈이, 왕안석 등 당송팔대가가 산에 올라 시조를 남겼다. 
 
루산에 9세기 초기에 당나라의 이발(李渤)이 백록동 서원(白鹿洞 書院)을 창건하여 12세기 중반에 남송의 주희가 부흥을 시켰다. 숭양서원(崇陽書院) 악록서원(岳麓書院), 응천서원(應天書院)과 함께 중국 4대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루산은 낙차가 155m에 달하며 삼첩천에 가지 않으면 여산을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未到三叠泉, 不算庐山客) 라고 하였다. 지금도 시인 묵객의 4백여 개의 석각과 9백여 개의 명문이 남아있다.  
 
이백(李白)은 당나라 때 시인으로 두보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시선(詩仙) 이백이 려산폭포 높이가 삼천척이라고 하자 송도삼절 황진이는 려산보다 천마산이 해동의 으뜸이라 응수했다. 

 

 

당나라의 시인2. 두보 
두보(杜甫)는 자, 자미(子美) 호, 소릉(少陵)이다. 
 
봄날(春望) / 두보(杜甫)  
國破山河在 나라가 깨졌는데도 산천은 여전하여
城春草木深 봄이 돌아오자 푸나무가 무성쿠나
感時花濺淚 시절을 생각함에 꽃을 봐도 눈물 왈칵
恨別鳥驚心 이별이 원통해서 새 노래도 마음 덜컥
烽火連三月 봉화가 석 달 동안 줄기차게 이어지니
家書抵萬金 집안 소식 만금 줘도 듣기가 쉽지 않네
白頭搔更短 흰 머리 긁고 긁어 자꾸만 짧아지니
渾欲不勝簪 이제는 비녀마저도 도저히 못 꽂겠네  
 
두보(杜甫)는 당나라의 시인으로 이백과 함께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두보는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을 시로 묘사한 민중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린다. 대표작으로 《북정(北征)》 《추흥(秋興)》 《삼리삼별(三吏三別)》 《병거행(兵車行)》 《여인행(麗人行)》 등이 있다.

그의 시 작품과 시풍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 고려시대에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두시언해(杜詩諺解)는 성종(成宗) 때 유윤겸(柳允謙)이 두보의 한시를 풀이한 언해서이다.  


 당나라 3대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했고 병이 나자 정사를 측천황후가 대행했다. 4대 중종이 즉위하여 생모 측천무후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즉위 1개월 만에 폐위되자 5대 당예종이 즉위하여 6년 만에 생모 측천무후에게 폐위됐다.  
 
측천무후는 2대 당태종 이세민의 부인이자 며느리이며 3대 당고종의 계모이자 부인이고 4대 당중종과 5대 당예종의 생모이며 6대 당현종의 조모이다. 중국 최초 최후의 여황제로 즉위하여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무주의 치(武周之 治)'를 이루었다.  
 
4대 당중종은 측천무후가 폐위되자 다시 황제로 복위하여 자신의 계비인 위황후에게 살해됐다. 위황후가 상제를 황제로 옹립하자 이융기가 상제와 위황후를 축출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5대 예종을 복위시키고 황태자가 되었다.  
 
이융기는 생부 예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6대 현종으로 즉위하여 ‘개원의 치(開元之 治)’를 이루었다 황후 무혜비가 사망하자 며느리 양귀비와 사랑에 빠졌다. 양귀비 일가의 전횡이 하늘을 치르자 안록산과 사사명이 안사의난(安史之亂)을 일으켰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서 양귀비가 자살하고 위구르족이 수도 장안(長安)을 정복하고 유리했다. 두보는 8년간의 전란으로 황궁은 폐허가 되고 국토가 유린당해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고통받고 있는데 속절없이 피는 꽃을 보고 봄날(春望)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