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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몽골 특집3~4.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

몽골 특집3. 칭기즈칸  
 

카마그몽골족의 에수게이는 메르키트족의 후엘룬을 약탈하여 결혼했다 몽골족과 메르키트족은 원수지간이 되었다. 에수게이는 타타르족의 장수 테무친 우게를 죽이고 아들의 이름을 테무친이라 하였다. 에수게이는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됐다.  
 
메르키트족은 에수게이가 후엘룬을 약탈한 것에 대한 복수로 테무친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했다. 테무친은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케레이트족 부족장을 찾아가서 결혼동맹을 맺고 메르키트족에 공격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테무친은 케레이트족의 의형제 자무카와 함께 메르키트족을 공격하여 임신한 상태의 아내 보르테를 구출했다. 세력을 형성한 테무친은 몽골족으로부터 칸으로 추대됐다. 의형제 자무카가 시기를 느끼고 테무친에게 공격했다.  
 
테무친이 배신자 자무카를 공격하자 나이만족에게 도망갔다. 테무친은 여진족 금나라를 등에 업고 몽골족을 핍박하던 타타르족을 정벌하고 자무카가 도망간 나이만족을 정벌했다. 테무친은 몽골을 통일하고 대몽골제국의 칭기즈칸으로 즉위했다.  
 
에스게이와 첫 번째 부인 소치겔 사이에 벡테르, 벨구테이를 낳았고 두 번째 부인 호엘룬 사이에 보르테, 테무친, 카사르, 하지운을 낳았다. 칭기즈칸과 보르테 사이에 1남 주치, 2남 차가타이, 3남 오고타이, 4남 툴루이를 낳았다.  
 
칭기즈칸의 장남 주치는 어머니 호엘룬이 메르키트족에 납치되어 돌아와서 낳은 아들이다. 주치는 아버지 칭기즈칸보다 먼저 사망했다. 주치의 아들 바투가 4대 몽케칸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킵차크칸국을 봉분 받아 세습했다.  
 
칭기즈칸의 차남 차가타이는 형 주치의 출신을 문제 삼아 갈등했고 금나라 남송 호라즘제국 서하를 원정했다. 2대 오고타이칸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차가타이칸국을 봉분 받아 세습했다. 차가타이는 2대 오고타이칸의 형이다.  
 
칭기즈칸의 삼남 오고타이는 아버지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둘째 형 차가타이의 지원을 받아 2대 대칸으로 즉위했다. 금나라를 정복하고 유럽원정 중에 병사했다. 오고타이 아들 귀위크가 3대 대칸으로 즉위하여 2년 만에 급사했다.  
 
칭기즈칸의 사남 툴루이는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임시 대칸이 되어 셋째 형 오고타이에게 대칸 직위를 양보했고 오고타이칸이 병이 들자 독배를 마시고 사망했다. 툴루이는 4대 몽케칸과 5대 쿠빌라이의 아버지이다.


몽골 특집4. 쿠빌라이칸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에수게이의 아들이며 2대 오고타이칸은 칭기즈칸의 2남이다. 3대 귀위크칸은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2대 오고타이칸의 아들이다. 4대 몽케칸은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이다.  
 
툴루이는 칭기즈칸의 사남이자 4대 몽케칸, 5대 쿠빌라이칸, 홀레구, 아리크부케의 아버지이다. 3대 귀위크칸이 즉위 2년 만에 요절하자 툴루이의 첫째 아들 몽케가 쿠릴타이에서 칸으로 추대됐다. 몽케칸은 넷째 동생 아리크부케를 총애했다.  
 
몽케칸이 쿠빌라이와 함께 남송 원정을 떠났다 몽케칸이 원정길에서 사망하자 수도 카라코룸을 수비하던 툴루이의 넷째 아들 아리크부케가 쿠릴타이를 열어 5대 대칸으로 추대됐다. 아리크부케는 명분을 획득하여 정통성을 확보했다.  
 
툴루이의 둘째 아들 쿠빌라이는 남송원정을 중단하고 개평부에서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5대 대칸으로 추대됐다. 몽골제국은 두 명의 대칸이 존재하게 되었다.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 양군의 내전에서 4년 만에 쿠빌라이가 아리크부케의 항복을 받았다.  
 
쿠빌라이는 아리크부케는 용서하고 다시 쿠릴타이를 열고 칸에 올랐다. 쿠빌라이는 자신은 짐(朕), 몽케는 선황(先皇)이라 선언했다 쿠빌라이는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개칭했다.  
 
할아버지 칭기즈칸을 태조(太祖)로 추증하고 아버지 툴루이는 예종(睿宗)으로 추존했다. 2대 오고타이에게 태종(太宗), 3대 귀위크칸에게 정종(定宗), 4대 몽케칸에게 헌종(憲宗)으로 묘호를 올렸다.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복하고 이민족 왕조로서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다. 여진족과 거란족의 잔당을 토벌했고 고려를 부마국으로 편입했고 베트남 북부와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를 장악했고 일본원정은 실패했다.  
 
쿠빌라이는 35년 동안 집권하며 봉건 제후제를 폐지하고, 중앙 집권제를 확립했다. 마르코 폴로는 "아담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지역과 재물, 영토를 소유한 사람이다" 라고 동방견문록에 기록했다.  
 
쿠빌라이는 원성종의 아버지인 명효태자와 충렬왕비인 제국대장공주의 아버지 계국대장공주와 복국장공주의 증조할아버지, 조국장공주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쿠빌라이칸이 사망하자 손자인 테무르가 성종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