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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와 실전게임

- 말의 홍수 시대, 책임 없는 훈수꾼들 -

훈수와 실전게임

- 말의 홍수 시대, 책임 없는 훈수꾼들 -

 

칼럼니스트  이 상 수

 

요즘 방송을 보면, 공영방송이든 유튜브 TV든 정치와 사회 이슈를 다루는 패널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유로운 프리랜서 해설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이야기꾼에 불과하다. 그 중에 몇 분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분이 있긴 하다. 그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패널들의 임무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복잡한 현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데 있다. 방송이 끝나면 그 말에 대해 책임을 묻는 피드백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흥미로운 말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면 그들의 미션은 완수된 셈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 훈수와 실전의 간극 ― 청년 시절의 교훈

 

나는 1960년대 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의 부끄러운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퇴근 후 선배들이 휴게실에서 바둑을 두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바둑을 곁에서 보며 자연스레 훈수를 흉내 내기도 했던 터라, 나름대로 바둑의 수(手)를 읽을 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한 판 두자”고 제안하셨다.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마지못해 판 위에 돌을 올렸다. 몇 수 지나지 않아 선배는 미소 지으며 “자네, 바둑 둬본 적 없구먼” 하셨다. 그 순간 내 안의 ‘지식의 거품’이 터져버렸다. 옆에서 본 훈수의 기억은 실전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어설픈 앎과 경험은 다르다’는 평생의 교훈을 얻었다.

 

◆ 의사결정의 세계 ― 부분적 정보의 위험

 

의사결정이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원리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부분적 정보로 전체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과잉확신의 함정(overconfidence bias)’이라 부른다. 훈수꾼은 눈앞의 한 수를 명쾌히 지적할 수 있지만, 그 한 수가 전체 판세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미디어 속 패널들도 이와 같다. 자신의 단편적 경험이나 이념적 확신으로 현실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마치 정답을 아는 듯 말하지만 실제 정책·행정의 복잡성은 간과한다. 훈수는 때로 통찰이 되지만, 책임이 결여되면 공허한 소음이 된다.

 

◆ 실전의 자리, 그리고 책임의 윤리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실전의 자리에 선 사람의 부담은 커진다. 정책결정자, 공직자, 정치인, 그리고 시민 리더 모두가 그렇다. 훈수꾼의 언어는 가벼울 수 있지만, 실전가는 한 수를 두기 전 수십 번의 이해관계와 결과를 따져야 한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그 말에 대한 윤리적 책임 또한 커져야 한다. 훈수는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의 견제 장치이자 공론장의 활력소다. 그러나 훈수는 실전을 조롱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훈수꾼은 실전의 무게를 존중하고, 실전가는 훈수의 지혜를 경청할 때 비로소 사회는 건강한 균형을 찾게 된다.

 

◆ 결론: 말의 시대, 책임이 품격을 만든다

 

오늘 우리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말이 지혜는 아니다. 훈수는 때로 통찰이 되지만, 책임이 빠진 말은 소음이 될 뿐이다. 한때 훈수를 잘했다고 해서 실전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오만이다. 말은 가볍게 할 수 있지만, 실전은 무겁게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실전 앞에서는 말의 무게를 견딜 만큼의 경험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책임이 따르지 않는 말은 훈수가 아니라 방해가 되고, 책임을 지려는 말만이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 단순한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길 때, 우리의 공론장은 비로소 진지함과 품격을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품격은 말의 양이 아니라 말 뒤에 서 있는 책임의 깊이가 결정한다. 끝.

 

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이상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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