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佛敎)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 샤카족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 고타마’가 브라만교의 카스트제도를 대신하여 불교를 창시했다.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우리나라 최초로 불상(佛像)과 불경(佛經)을 전래했다. 384년 백제 침류왕 때 인도(印度)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을 거쳐 불법(佛法)과 불도(佛道)를 전했다. 527년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인해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공인했다. ◆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 법성포와 불갑사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法聖浦)는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이며,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이다. 불갑사(佛甲寺)는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도래하여 최초로 지은 사찰로 부처의 불(佛)자와 첫째 갑(甲)자를 따서 명명했다. 보물 제830호 불갑사 대웅전, 천연기념물 제112호 불갑사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상사화(相思花)가 유명하다. 법성포는 법성포 굴비의 본고장으로 굴비는 이자겸이 유배와서 ‘비굴하지 않겠다’며 조기를 진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태고종 총림 선암사 송광사(松廣寺)는 순천시 조계산 서쪽 기슭에 선
나는 1남 1녀를 두었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되 면 하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라면 끓이는 것과 계란 프라이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줄 수 없으니 직접 해서 먹으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종 종 주변 엄마들에게서 들어보면 불이 무 섭기 때문에 자신들은 직접 해서 먹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리 들을 때마 다 '나에겐 나쁜 계모 기질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나는 가르쳤다. 일과 육아를 둘 다 책임지고 있는 워 킹 맘이었으니.... 그 당시 남편들에게 육아나 가사에 그다지 도움받으며 살 던 시대가 아니어서 더 더욱 그러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들이 취사병으로 보직을 받아 군 복무 잘하고 전역을 하였다. 그 뒤로 못하는 음식이 없었다. 엄마인 나도 엄두 내지 못하는 한식, 양식들도 곧잘 해서 내어 오곤 하였다. 그래서 함께 하는 동안 자주 먹을 수 있을 것 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들도 바빠지고 가족들도 바빠지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아들이 결혼식을 앞두던 마지막 여름. 가족들을 위하여 삼계탕 을 끓여내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전라도는 한반도 서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광주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를 말한다. 전라도는 북쪽으로 금강과 동쪽으로 섬진강과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남해와 서쪽으로 서해와 면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차련 이남, 공주랑 바깥'을 전라도라고 칭한다. 전라도를 김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호남(湖南)이라 한다. 벽골제는 한반도의 인공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하며 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나주(羅州)는 마한의 54개국의 하나로 백제 근초고왕이 정복하고 발라군(發羅郡)이라 하였다.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신라 경덕왕이 금성군(錦城郡)으로 개칭했다. 궁예는 왕건을 파견해 견훤의 후방인 금성군을 점령하고 나주(羅州)로 개칭했다. 왕건이 나주 출신 장화왕후 오 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고려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1018년 고려 현종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全羅道)라고 명명했다. 전라도,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 김천일(金千鎰)은 나주목에서 태어나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업하며 김인후, 유희춘 등과 교유했다. 담양 부사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Startup Issue & Trend」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핵심 이슈와 트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류운송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물류산업 관련 정부의 정책 방향 등을 살펴보고, 해당 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을 알아보겠습니다. 물류·운송 산업의 디지털 전환 요즘은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식품, 의류, 생필품, 화장품,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거래하는 시대다. 이러한 경향은 IT기술의 발달, 1인 가구 증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문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더욱 세분화된 품목과 전문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판매자들은 고객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과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필연적으로 스마트한 물류·운송 산업에 대한 니즈 역시 증가해 왔다. 물류·운송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주문배송시설을 200개 이상 확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편리한 일상과 신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첨단 물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생활 밀착형 도시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역 간 격차 없는 물류 서비스 기반을 제공할 예정
이낙연 전 대표가 11일(목) 오후 2시 민주당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전진숙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은 민주당에서 많은 혜택을 누린 정치 지도자로서 해선 안 될 행위를 한 것이다”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전진숙 후보는 “정치 지도자의 길은 품위와 기품이 있어야 한다며 이 전 대표는 평소에 신중함과 기품있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지금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당 대표와 민주당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 지도자로서 다른 탈당 정치인과 달라야 했다. 다른 정치인들이야 자신들의 정지적 유불리에 따라 탈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평소에 민주당이 자신의 ‘정신의 집’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런 모든 발언들이 허언이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한국 정치의 혁신과 변화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자명하다.전진숙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 선택은 “총선에서 보수정권을 돕는 행위로 윤석열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인 총선을 민주당 심판 선거로 전환하려는 국민의힘을 전략에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 지적했다. 전진숙 후보는 “더욱 심각한 것은 이낙연 전 대표가
1952년 7월 26일 아르헨티나의 한 영화관 집중하며 영화를 보던 순간 갑자기 스크린이 꺼진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리 지르며 항의하기 시작한다. 이때 극장 관계자가 앞으로 나와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방금 전 8시 23분경에 우리의 정신적 지도자 ‘에바 페론’ 여사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불과 3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아르헨티나 대다수의 대중은 그녀의 죽음을 가슴 깊이 애도했다. 한 달간의 장례식은 국민들이 바치는 꽃으로 가득했다. 빈민층의 딸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녀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너무도 짧고 극적인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간 ‘에바 페론’의 이야기이다. 1919년 5월 7일 아르헨티나, 드넓은 초원 지대인 팜파스에 속한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에서 그녀가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농장 주인 후안 두아르테의 첩이었다. 아버지 두아르테는 그녀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에바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에바는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떠나고 싶어 했다. 대중 잡지를 읽으며 대도시의 화려한 배우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단군신화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도읍으로 정하고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인간세상을 다스렸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하여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백일 동안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먹고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은 참으면서 쑥과 마늘을 먹고 햇빛을 보지 않아 21일 만에 웅녀(熊女)가 되었고,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환웅은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았다. 단군왕검은 즉위한 지 50년 만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칭했다.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白岳山 阿斯達)로 천도하고 1,500년 동안 조선을 다스렸다. 단군왕검은 1,908세가 되어 아사달(阿斯達)에서 사망했다. 보각국사 일연이 역사와 설화를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기록한 삼국유사(三國遺事) 제1권 기이(紀異)에 기록된 단군신화이다. 기전체는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이며,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편찬
어느 날 아침 아들이 급하게 날 깨우며 말하길, 영등포역까지 태워다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알았다고 하였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아들 말에 눈곱도 떼지 않고 수면 바지 위에 긴 털 코트만 걸쳤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앞, 뒤 터진 털 슬리퍼였지만 발이 시린지도 모른 채 차에 대기하고 있다 아들을 태워 역에서 내려주었다. 아들을 태워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딸이 출근할 준비를 다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잔하는 바람에 차를 놓고 왔으니 출근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오빠 요청은 들어주고 자기 요청은 들어주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까 싶어 두말없이 알겠다고 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오늘 오전 시간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엇 하나 달라질 것 없는 차림새로 현관문 앞에서 그대로 턴 하여 딸을 태워다 주었다. 가는 길에 절친이 운영하고 있는 상담 오피스텔이 보였다. 모닝커피나 한잔하고 갈까 싶어 전화하니 함께 마시자며 오라고 하였다. 빠져나오기 쉬운 곳에 주차하고 나의 꼴을 보자니 영락없이 나사가 빠진 모습 그 자체였다. 수면 바지와 헐렁한 나시 티 위에 털 코트로 상체를 감싸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경비실 아저씨에게
2023 계묘년을 보내며 계묘년(癸卯年) 달력이 모두 넘어갔다. 계묘년은 육십 간지의 40번째 해로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였다. 토끼는 토끼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 우리나라에는 멧토끼류, 산토끼, 굴토끼류, 집토끼, 애완용 토끼 등이 있다. 토끼는 생태 피라미드 중 가장 낮은 단계라서 교미하는 시간은 2초 만에 끝나지만 2초 후에 다시 교미를 할 수 있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가능하다. 짧은 앞다리와 긴 뒷다리에 큰 귀, 붉은 눈, 긴 앞니, 짧은 꼬리 등이 특징이다. 봄에 캄보디아 프놈펜 동남쪽 캄폿(Kampot)으로 의료봉사를 가서 킬링필드의 아픔보다 희망을 목격했다. 여름에는 몽골 울란바트로 동북쪽 테를지국립공원에서 푸른 초원에서 징기스칸의 후예를 만났다. 가을에는 수완지구 행복한요양병원으로 옮겨 인생이모작을 시작하고 있다. 겨울에는 한반도 동남쪽 잃어버린 우리 땅 대마도에 가서 의병장 최익현과 미운의 덕혜옹주의 그림자를 만났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1924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반달’의 가사이다. 동요의 계수나무는 중국과 일본이 원산지로
이낙연은 환영적 우월감(illusory superiority)에서 벗어나야 한다(下) 이낙연는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전라남도 지사, 국무총리 그리고,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양한 공적 직책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경력을 갖는 자이기에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전라남도 지사, 전 국무총리,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등의 칭호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낙연으 그동안의 여러 조직들을 거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 및 행적을 보면 그 어느 직함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는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을 할 때 신문 지상에 알려진 사건들을 파악해 보면 뚜렷한 실적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주관적인 기술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제시하는 글로 이번은 2회차이다. 이낙연이 어떤 능력을 갖춘 정치인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먼저 이 칼럼 상편에 게시한 글의 개요를 다시 제시하고 이번 칼럼을 마무리 하겠다. 첫째는 이낙연은 전 동아일보 기자일 때 전두환 찬양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둘째는 이낙연이 전 국회의원일 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가결에 찬성했나 반대했냐는 질문에 이낙연은 200
아침 출근 준비는 언제나 분주했다. 그렇기에 출근하는 길에 어디를 들려서 간다는 것은 더더욱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늘 언제나. 내게는 우리 집과 가까이 살고 계시는 친정엄마가 계셨다. 시간 개념 없이 전화하시는 엄마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놓칠 때가 많았다. 어느 금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돌아가시기 삼 일 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걸려온 전화를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게 되었다. 엄마의 말씀은 오전에 봉천동 현대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겠다는 말씀이셨다. 그날은 나의 일정상 늦게 출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출근하는 길에 모시고 시장에 내려드리겠다고 전해 드렸다. 시장에 내려드린 날 오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받지 않으셨다. 약간의 걱정스러움이 밀려왔다. 시장에 내려드릴 때 쉽게 그곳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여기가 어디냐? 오메"라며 엄청 숨차 하시고 장소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셨기에 드린 전화였다. 내려드릴 당시 좌회전 차량들이 계속 오는 상황이라 엄마를 내려드리기 바빴고 교통 흐름 상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엄마는 세 번째로 전화를 드렸을 때 비로소 받으셨다. 휴~ 다행이었다. 나도 무언가 직감을 한
이낙연는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전라남도 지사, 국무총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양한 공적 직책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직책을 맡은 자이기에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전라남도 지사, 전 국무총리,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등의 칭호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낙연의 그동안의 여러 조직들을 거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 및 행적을 보면 그 어느 직함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는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을 할 때 신문 지상에 알려진 사건들을 파악해 보면 뚜렷한 실적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주관적인 기술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제시하니, 이낙연이 어떤 능력을 갖춘 정치인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첫째는 이낙연이 전 동아일보 기자일 때 전두환 찬양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이의 발단은 ‘서울의 봄’ 계기로 회자되는 ‘전두환 찬양’ 기사이다. 이낙연은 1979년 신문사에 입사했고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이 됐다. 비슷한 시기 한 사람은 동아일보에, 또 한 사람은 청와대에 둥지를 튼 셈이다. ‘전두환 찬양’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이낙연 기자’의 과거 기사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