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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고대사 폭군 이야기와 '대한민국 정치'

-주지육림(酒池肉林)/포락지형(炮烙之刑)/천금매소(千金買笑)
-폭군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는 대한민국 정치

◆ 夏(하)나라 걸왕(桀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루었다.
    향락이 극에 달한 방탕한 생활을 이르는 말.

 

夏(하)나라는 중국에서 기원전 2700년 경부터 기원전 1600년 경까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전설상의 나라이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우임금이 선양을 받아 건국했고, 마지막 군주 걸왕이 말희(末喜)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기다가 商(상)나라 탕왕에게 멸망했다.
 
주지육림은 걸왕이 말희와 함께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 무렵 인공으로 만든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못에는 술이 가득했고, 그 둘레에는 고기는 산처럼 쌓이고, 포는 숲처럼 걸려 있었으며,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었고, 수백의 미소년 소녀들과 발가벗고 그 사이를 서로 쫓고 쫓기고 하며, 밤낮 없이 계속 술을 퍼 마시고 즐겼다’라고 사마천은 사기에 걸왕과 말희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을 기록했다.

 

 暴君(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桀紂(걸주)의 淫亂無道(음란무도)한 생활을 표현하는 말이 주지육림이다. 桀(걸)은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고, 紂(주)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 商(상)나라 주왕(紂王)의 포락지형(炮烙之刑)


‘굽고 지지는 형벌’, 가혹한 통치자가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가리킨다

 

상(商)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기원전 1600년 경부터 기원전 1046년 경까지 실존했다. 탕왕은 7년 가뭄에 자신을 제물로 바친 성군이다. 상(은)나라의 마지막 군주는 폭군 주왕(紂王)이다. 주왕(紂王) 역시 술과 여자를 좋아했는데 그에게는 절세미녀인 달기(妲己)가 있었다. (*상(商)나라는 은(殷)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했다. 걸왕이 그랬던 것처럼 주지육림 속에서 밤이 새도록 마시며 극도로 음탕한 짓을 했다. 궁전에서는 밤낮으로 잔치를 열었고, 음악소리와 교태로운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달기는 잔인하고 음탕하여 주왕과 짝이 맞았다. 

 

달기가 주왕을 가지고 놀자 신하들은 달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움직였고 나라는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정사를 바로잡기를 간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주왕은 자신을 반성하기는커녕 바른 소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잔혹한 형벌을 만들었다. 포락(炮烙)의 형(刑)이었다. 

 

포락지형(炮烙之刑)은 
바른 소리를 하거나 자신을 비방하는 자, 사치와 향락에 불만을 가진자들을 옷을 벗겨 ‘불에 달군 구리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맨발로 건너게 하여 미끄러져 숯불 속으로 떨어져서 고통스럽게 죽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짓는 형벌’이다. 특히 옳은 말을 하는 충간자(忠諫者)는 모두 이 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는 너무 끔찍한 형벌로서 죄인은 잡히기 전에 자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백성을 위한 제도를 창시하지는 못할망정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나 창시하고 있다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닿자 천명은 떠나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치를 들고 일어났다. 무왕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강태공의 보좌를 받으며 상나라를 공격했다. 

 

상나라 군사들은 모두 무기를 거꾸로 메고 싸우며 무왕에게 길을 터 주었다. 뒤늦게 시세가 불리함을 알게 된 주왕은 녹대 위에 올라가 스스로 불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주왕의 잔악함에 지친 백성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무왕을 환영했다. 

 

무왕은 주왕의 시체에 세 발의 활을 쏘고 검으로 목을 잘라 깃대에 걸게 하였다. 달기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목이 잘려 깃대에 걸렸다. 이렇게 상나라는 망하고 주나라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 周(주)나라 유왕(幽王)의 천금매소(千金買笑) 

천금을 주고 사랑하는 여자의 웃음을 산다는 말이다.

 

서주(西周)의 마지막 임금 유왕(幽王)이 포사(褒姒)를 웃게 하려고 천금을 들여 봉화를 헛되이 올리게 한 데서 유래했다.

 

주(周)나라는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790년 동안 유지했다. 선왕이 죽고 태자 궁열(宮涅)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바로 서주(西周)의 마지막 임금 유왕(幽王)이다.

 

유왕은 나라 정사는 돌보지 않고 향락만 즐기는 왕이었다. 후궁에서 경국지색의 포사(褒姒)를 껴안고 밤낮 마시고 놀았다. 그런데 포사는 웃지를 않았다. 유왕은 그녀의 웃음을 보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왕이 “왕후를 한 번 웃게 하는 사람에게 천금 상을 내리리라”라고 선포했다. 


괵석보(虢石父)가 제안해, 거짓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여산(驪山) 앞에 소집하였다. 제후들은 황망히 여산 앞에 달려왔으나, 봉화가 적의 침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포사는 이 광경을 보고 단순호치(丹脣皓齒)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괵석보는 천금을 상으로 받았다.

 

재미들린 유왕은 거짓 봉화를 자주 올려 제후들을 골탕 먹였으며, 포사를 후(后)로 삼고,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는 포사의 아들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이에 분노한 정후(正后)의 아버지인 신후(申侯)가 여나라(呂) 등과 연합하여 견융족(犬戎)과 함께 호경(鎬京)으로 대거 진공해왔다. 유왕은 다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이 봉화가 또 거짓인 줄 알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견융족의 병사가 유왕을 살해하였다. 결국 절세미녀 포사는 주나라의 멸망의 원흉이 되었다. 

 

유왕의 뒤를 이은 평왕(平王)은 견융의 난을 피해 동쪽 뤄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겼으나, 나라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었다. 수도 천도 이전을 '서주(西周)', 이후를 '동주(東周)'로 구분하며, 동주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동주는 주나라를 전통을 인정하며 춘추오패가 할거하던 '춘추시대'와 주나라를 전통을 부정하며 전국칠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진(秦)나라는 주나라가 견융족의 침입으로 시안에서 뤄양으로 쫓겨날 때 평왕을 호위하여 제후국이 되었다. 진나라는 상앙의 법가를 도입하여 춘추시대에 춘추오패가 되었고, 전국시대 전국칠웅이 되었다.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제31대 진왕이 혼란의 전국시대를 통일했다. 중국 최초로 시황제로 칭하고 분서갱유를 강행했고,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시황제가 사망하자 태자 부소, 환관 조고, 승상 이사 등의 권력 싸움으로 멸망했다. (출처. 서일환의 역사야톡)

 

 

폭군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를 살펴보면 대게 주색에 빠진 군주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 잔인하고 음탕한 절세미녀의 왕비나 여인이 군주를 현혹하여 나라를 망하게 했다. 그들의 말로도 좋지 않았다. 

 

처벌과 술 좋아하는 왕, 잔인하고 욕심 많은 인조미인 왕비, 대한민국에 이런 지도자가 나타났나 생각하면, 왠지 두려워 진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권력싸움과 내부 분열로 통일왕조 진나라가 망했다.
강력했던 고구려도 똑 같이 망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협치가 사라졌다. 대통령은 취임후 지금까지 다수당인 야당 대표와 회동을 하지 않았다. 양당의 정치인과 장관들의 행태는 깊이와 품위가 없고 정쟁도 더티하다. 국론 분열, 조직도 분열, 민생은 뒷전이며 저급한 말장난 만 오간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16세기 훈구파와 사림파가 서로를 죽이고 탄압했던 4대사화를,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진 붕당정치의 당파 싸움을 보는 듯 하다.

 

조선통신사 정사 황윤길(서인)은 ‘왜국은 반드시 쳐들어 올것이니 대비책을 마련함이 옳다’고 하였고, 부사 김성일(동인)은 ‘왜국이 침략할 정황을 보지 못했으며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상반된 보고를 하였다. 선조가 관백(關白)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하여 묻자, 황윤길은 ‘눈에 광채가 있으니 담력과 지력을 겸비한 사람’이라 하였고, 김성일은 ‘그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울게 없다’고 하였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1%만 있어도 대비하고 준비해야 된다. 그러나 선조와 조정은 임진왜란 정보를 무시하였고,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믿어 버리는 어리석은 권력자가 되어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고, 어이없이 침략을 당하고 말았다. 백성에게 드리워진 피폐함은 폭군이 주는 피해보다 더 컷고 나라는 망할 뻔 하였다. 

 

또한 선조와 권력자들은 민심이 의병(義兵)에게 가는 것을 경계하여 음모를 꾸몄고, 충신들을 국문하여 의병장 김덕령을 29세에 옥사 시켰고, 김덕령의 죽음을 본 곽제우는 의병을 해체하고 은거 했으며, 이순신을 백의 종군 시켰다.


당쟁정치는 나라를 망치고 국민의 삶을 피곤하고 가난하게 만든다. 민족의 정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정쟁과 분열만 남았는가? 개혁은 사라지고, 국민의 생명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가 관리는 태만하고, 소수의 올바른 정치인의 소리는 메아리를 울리지 못하고 작게만 들린다. 국가는 곧 국민인데 그 국민이 국가와 정치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으니, 왠지 두려워 진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보수,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보수의 탈을 쓴 변절자들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그들은 건재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30%의 굳건한 지지층이 변하지 않고 있다. 진정한 보수는 없는 것일까? 보수는 왜 초심을 잃고 이득만 쫒는 변절자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진보를 칭찬할 수도 없다. 정치력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총질에 열중이다. 거대 양당에서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겠다는 슈퍼 거머리 같은 기생력을 보여주는 의원들, 정치적 소신과 원칙에 따라 분당하려는 자들의 파괴력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386세대의 용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운동권으로 정치인이 되었고, 공부를 하지 않아 실력이 부족하니 용기도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그들도 이젠 기득권이 된 것일까?

 

한국의 정치,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피로 쓴 역사의 교훈을 새겨 듣고,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들은 나라를 버리지 말라! 정쟁과 분열을 멈추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