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은 환영적 우월감(illusory superiority)에서 벗어나야 한다(下) 이낙연는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전라남도 지사, 국무총리 그리고,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양한 공적 직책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경력을 갖는 자이기에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전라남도 지사, 전 국무총리,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등의 칭호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낙연으 그동안의 여러 조직들을 거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 및 행적을 보면 그 어느 직함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는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을 할 때 신문 지상에 알려진 사건들을 파악해 보면 뚜렷한 실적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주관적인 기술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제시하는 글로 이번은 2회차이다. 이낙연이 어떤 능력을 갖춘 정치인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먼저 이 칼럼 상편에 게시한 글의 개요를 다시 제시하고 이번 칼럼을 마무리 하겠다. 첫째는 이낙연은 전 동아일보 기자일 때 전두환 찬양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둘째는 이낙연이 전 국회의원일 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가결에 찬성했나 반대했냐는 질문에 이낙연은 200
아침 출근 준비는 언제나 분주했다. 그렇기에 출근하는 길에 어디를 들려서 간다는 것은 더더욱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늘 언제나. 내게는 우리 집과 가까이 살고 계시는 친정엄마가 계셨다. 시간 개념 없이 전화하시는 엄마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놓칠 때가 많았다. 어느 금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돌아가시기 삼 일 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걸려온 전화를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게 되었다. 엄마의 말씀은 오전에 봉천동 현대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겠다는 말씀이셨다. 그날은 나의 일정상 늦게 출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출근하는 길에 모시고 시장에 내려드리겠다고 전해 드렸다. 시장에 내려드린 날 오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받지 않으셨다. 약간의 걱정스러움이 밀려왔다. 시장에 내려드릴 때 쉽게 그곳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여기가 어디냐? 오메"라며 엄청 숨차 하시고 장소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셨기에 드린 전화였다. 내려드릴 당시 좌회전 차량들이 계속 오는 상황이라 엄마를 내려드리기 바빴고 교통 흐름 상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엄마는 세 번째로 전화를 드렸을 때 비로소 받으셨다. 휴~ 다행이었다. 나도 무언가 직감을 한
이낙연는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전라남도 지사, 국무총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양한 공적 직책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직책을 맡은 자이기에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전라남도 지사, 전 국무총리,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등의 칭호를 붙이고 싶었지만 이낙연의 그동안의 여러 조직들을 거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 및 행적을 보면 그 어느 직함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는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을 할 때 신문 지상에 알려진 사건들을 파악해 보면 뚜렷한 실적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주관적인 기술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제시하니, 이낙연이 어떤 능력을 갖춘 정치인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첫째는 이낙연이 전 동아일보 기자일 때 전두환 찬양 기사로 시민들로부터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이의 발단은 ‘서울의 봄’ 계기로 회자되는 ‘전두환 찬양’ 기사이다. 이낙연은 1979년 신문사에 입사했고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이 됐다. 비슷한 시기 한 사람은 동아일보에, 또 한 사람은 청와대에 둥지를 튼 셈이다. ‘전두환 찬양’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이낙연 기자’의 과거 기사를 확인
면앙정 송순(宋純, 1493년 성종 24년∼1583년 선조 16년)은 담양에서 태어나서 호남 사림의 중조인 눌재 박상(朴祥, 1474~1530), 육봉 박우(朴祐, 1476~1546, 사암 박순의 아버지) 형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종9품으로 출사하여 50년 만에 정2품까지 승진했다. 교우로는 성수침(成守琛, 1493~1564, 우계 성혼의 아버지), 이황(李滉, 1501~1570), 양산보(梁山甫, 1503~1557, 담양 소쇄원을 조성한 이) 등이 있었고 문인(門人)으로는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제봉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송강 정철(1536~1593), 백호 임제(1549~1587) 등이 있었다. 중종의 장인인 외척 김안로가 권력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자연을 벗삼아 담양에서 4년간을 지냈다. 김안로가 탄핵을 받아 사사되자 송순은 경상도 관찰사로 복직했다. 중종의 처남인 외척 윤원형이 권력을 전횡하여 송순은 전라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복직했다. 송순은 77세에 정2품 의정부 우참찬으로 승진하자 벼슬을 사양하며 다시 담양으로 낙향했다.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워 주변에
우리나라 산림은 2~30㎝이상 쌓여 있는 낙엽들로 인하여 쉽게 발화되어 광범위한 지역에 큰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건조한 계절이 오면 산림부서 공무원들은 산불조심기간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이 기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산불예방 및 산불 진압을 위해 상황실에 상주하며,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산림청에서는 산불재난으로부터 산림과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산림부서 공무원 외에도 산불전문 인력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특히 봄, 가을철과 같은 산불 다발 시기에는 산불감시 인력을 집중 배치하여 산불 감시 및 초기진압에 힘을 쓴다. 또한 군, 경, 소방서, 산림항공본부 등의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철저한 재난 대응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최근 산림 주변 개발, 독가촌 및, 귀촌 인구 등의 증가로 과거에 비해 산불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3.11.) 발생한 산불은 5,368건(35,597ha)이다. 나무를 심고 울창한 숲으로 가꾸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산불로 인해 잿더미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산불은 일단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고 다시 원상태로 복원하는 데에도 수십
고려의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왕실과 중복되는 혼인관계를 맺었다. 이자겸은 정2품 상서좌복야 (尙書左僕射) 이호와 통의국대부인 (通義國大夫人)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부인 최씨는 종1품 시중(侍中) 최사추의 딸이었다. 조부 이자연은 종1품 중서령(中書令)을 지냈고 외조부 김정준은 정2품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이자겸은 16대 임금 예종의 장인이 되어 음서로 벼슬을 시작했다. 인종이 즉위하자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냈다. 결국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이자 겹장인까지 되어 나라의 모든 일을 맡고 있다는 뜻으로 지군국사(知軍國事)라고 칭하며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을 믿고 ‘이자겸의 난’ 일으켜 이자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진족 금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고려를 속국으로 전락시켰다. 또한 이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을 믿고 인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려 하였다. 인종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이자겸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자겸이 왕궁을 불사르고 인종을 유폐시키고 국사를 마음대로 처리했다. 하지만 왕족 이수와 귀족 김부식이 ‘이자겸의 난’을
만남에는 여러가지의 만남이 있습니다. 생선같은 만남, 꽃송이 같은 만남, 건전지 같은 만남, 지우개 같은 만남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손수건 같은 만남" 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힘이 들 때는 송알송알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 아무리 더러운 것을 닦고 닦아도 빨면 깨끗하게 새 것처럼 우리를 위해 위해 덮어주는 손수건 입니다. 우리는 어떤 만남을 만들 것인지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몸이 가는 길이 있고 마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몸이 가는 길은 걸을수록 지치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멈출 때 지칩니다. 또한 몸이 가는 길은 앞으로 앞으로만 뻗어 있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여러 갈래 길과 돌아가는 길도 있습니다. 몸이 가는 길은 비가 오면 젖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비가 오면 더욱 더 깨끗해집니다. 몸이 가는 길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바람이 불면 시원해지며 따뜻함과 사랑을 느낍니다. 혼자서 가는 길은 지치고 힘들겠지만 함께 가는 길엔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나며 마주보는 눈빛에 작은 입가에 미소도 배시시 번져갑니다. 어느 덧 11월이 우리에게 왔음을 알려줍니다. 푸른 가을 하늘을 마음
전주시(全州市)는 을사늑약 직후 일제가 전주부성을 철거한 자리에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됐다. 조선인들이 한옥촌을 짓기 시작하여 전주한옥마을을 형성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풍패지관, 풍남문, 전주향교, 전동성당 등 각종 문화재가 있다. 군산시(群山市)는 일제강점기 당시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성장한 항구 도시이다.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으로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시(南原市)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지리산과 대한민국 5대강 중 가장 깨끗한 섬진강을 사이에 있는 농촌 도시이다. 춘향가의 성춘향과 이몽룡이 만난 광한루가 있다. 진안군(鎭安郡)은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붙여진 명승 제12호 마이산이 아름답다. 무주, 진안, 장수는 '호남의 지붕'으로 '무진장(茂鎭長)'이라 하며 가장 원시적인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고창군(高敞郡)은 동백꽃으로 유명한 천년고찰 선운사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자라는 풍천장어가 유명하다. 전통의 도시, 전주 한옥마을과 남원 광한루 부안군(扶安郡)은 난리가 미치지 않는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신문에 안타까운 죽음을 접할 때 마다 착찹한 마음이 든다. 조그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더욱 그렇다. 광주시 연제동에서 발생한 모녀의 극단적 선택도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이웃의 불상사라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두 모녀가 남편의 상속 부채 3억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다가 관리비 40만원, 장례비 800만원을 남긴채 고층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다는 보도이다. 만약 그들이 남편 사망당시에 상속포기를 통해 부채를 떠 안지 않아도 되는 제도만 알았더라도, 상담을 통해서 파산선고를 통해 회생하는 절차가 있다는 것만 알았더라도 부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심 관리의 제도적 취약점으로 인해 과거 송파 세모녀 자살에서와 마찬가지로 수급자가 아니면 도움 요청할 방법이나 제도적 취약함으로 인해 생명의 포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안전망이란 '사회구성원들이 삶의 주기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위험들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보호해 주는 제도적 장치'를 지칭한다. 삶의 주기에서 나타나는 위험들에 대처하는 사회안전망의 가장 큰 목적은 빈곤을 예방
한 아름 가슴에 살포시 담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아주 큰 행복입니다. 봄이 오면 파릇 파릇 솟아나는 새싹에서~ 여름엔 푸르름과 뜨거운 햇빛~ 천사 같은 어린 친구가 햇님이 뜨거운 건 햇님이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가을엔 노랗게 노랗게 그리고 빨갛게 빨갛게 물드는 단풍잎들~~ 그리고 겨울엔 펑펑 내리는 함박눈속에서의 설레임~~ 작고 소소한 일상속에 특별함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특별함을 절대 놓치지 않으며 잘 가꾸어 나갑니다. 우리 나라 말의 아름다움을 찾아 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보다 말하지 않아 더 빛나는 것이 '믿음' 입니다. 말 한마디 보다 더 큰 건 행동입니다. 수 없이 말은 하지만 행동은 말과 다르면 우리는 실망을 하게 됩니다. 실망을 하게 되면 믿음은 점점 사라지게 되며 사라진 믿음은 다시 회복하기 힘들기에 우리는 포기를 하게 됩니다. 좋은 것을 보는 것은 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환하게 미소짓는 것은 얼굴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며 사랑스런 말소리는 입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인사하는 것은 몸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며 착한 마음씀은 마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이렇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탈을 쓴 의원들을 기억하자! 이른 아침 원고를 마치고 송고할 즈음 이재명 대표의 구속 기각 소식이 보여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한다. 그렇지만 지난 일주일 간의 정가의 소용돌이를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어 글을 송고하기로 하였다.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허물어져 간 가산을 일으켜 세우려고 몸부림치다가 쓰려졌다. 가장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막되어 먹은 아들 하나가 입원 중인 아버지께 찾아왔다. 그 아들은 아버지께 재산의 일부를 떼어달라고 압박하면서 ‘내 몫을 주지 않으면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하겠다’ 고 압박을 한 사건이 진실이라면 이런 자(者)를 뭐라고 할까요? 이런 자(者)는 인면수심의 탈을 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와 비슷한 일이 지난 9월 21일 국회 회의장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추태를 부린 사건과 유사하다. 그날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접수되어 본회의 의결을 실시한 날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가 ‘대장동 사건’의 의혹을 제기한 이후 검찰에서 사건을 인지하고 2년여 기간에 걸처 350여 차례의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증거는 없다
국회의원들은 국가가 위기에 빠졌는데 누구하나 현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당 대표가 여당과 정부에게 과제를 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하면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일부 수박계 의원들은 당 대표를 악마의 소굴로 몰아내려는 모의나 하고 있으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막돼먹은 놈들이나 할 수 있는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고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런 인간들이 국민의 대표로서 세비를 받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니 더더욱 한스럽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들이 180여 석이나 몰아 줬는데 그 알량한 국회의장(박병석, 김진표)이나 선출하여 개혁적인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더니, 이제는 현 정부에게 부역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니 이들은 선출한 국회의원들 모두가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원내대표의 선출도 마찬가지였다. 박원내 대표가 수박계라는 이야기가 떠돌아 항상 언제 돌출 행동을 할까 불안했었다. 당내 의원들도 박광온의 속성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를 원내 대표로 선출한 것은 거시적 안목보다는 자기들의 밥그릇에만 관심이 쏠려 선출한 결과였을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일부 쪼잔 한 민주당 의원들 속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