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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에세이] 지란지교의 아침 밥상

   어느 날 아침 아들이 급하게 날 깨우며 말하길, 영등포역까지 태워다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알았다고 하였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아들 말에 눈곱도 떼지 않고 수면 바지 위에 긴 털 코트만 걸쳤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앞, 뒤 터진 털 슬리퍼였지만 발이 시린지도 모른 채 차에 대기하고 있다 아들을 태워 역에서 내려주었다. 

 

아들을 태워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딸이 출근할 준비를 다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잔하는 바람에 차를 놓고 왔으니 출근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오빠 요청은 들어주고 자기 요청은 들어주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까 싶어 두말없이 알겠다고 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오늘 오전 시간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엇 하나 달라질 것 없는 차림새로 현관문 앞에서 그대로 턴 하여 딸을 태워다 주었다.  가는 길에 절친이 운영하고 있는 상담 오피스텔이 보였다. 모닝커피나 한잔하고 갈까 싶어 전화하니 함께 마시자며 오라고 하였다. 빠져나오기 쉬운 곳에 주차하고 나의 꼴을 보자니 영락없이 나사가 빠진 모습 그 자체였다. 수면 바지와 헐렁한 나시 티 위에 털 코트로 상체를 감싸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경비실 아저씨에게는 한 시간만 있다가 나올 것이라 말하였다.

 

들어가니 잘 왔다면서 자신은 아침을 먹어야 하니 떡국을 끓이겠다고 하였다. 떡국과 과일, 모닝커피를 마신 후 나올 수 있었다. 한 시간만 있을 예정이었던 시간은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나오는데 생각나는 시 구절이 있었다. 너무나 잘 아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딱 그랬다. 지란지교의 아침 밥상과 함께 한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지도 않고 찾아가 모닝커피 마시자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외출복이 아닌 잠자리에서 바로 나온 옷차림의 수면 바지와 그 위 상체를 감싼 털 코트를 입고 찾아가서도 흉이 될까 염려되지 않는 친구.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찾아가도 좋을 친구.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깊은 위로가 있는 아침.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아침. 이 아침의 행복을 나누며 감사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출근 준비를 서둘러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