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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4) 유학특집 8~10

유학특집8. 서주의 유왕과 동주의 평왕
유학특집9. 춘추전국시대
유학특집10. 제자백가와 유학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 4화

 

◆유학특집8. 서주의 유왕과 동주의 평왕

주나라 2대 주성왕과 3대 주강왕의 통치하던 40년을 성강의치(成康之治)로 불린다 10대 주여왕은 탐욕스러워 간신 영공을 등용하여 폭정을 자행했다.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주여왕이 도망가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정사를 대신했다.

10대 주여왕이 도망갈 때부터 11대 주선왕이 즉위할 때까지 주공과 소공이 정무를 맡아보던 14년을 공화(共和)라고 한다. 11대 주선왕이 주공과 소공의 보좌를 받아 국세가 중흥해 선왕중흥(宣王中興)으로 불린다.

12대 주유왕은 정실인 신후(申后)가 태자 의구(宜臼)를 낳았고 후궁인 포사(褒姒)가 백복(伯服)을 낳았다. 주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여 태자 의구를 폐위하고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주유왕은 웃지 않은 포사를 웃기려고 비단을 찢고 거짓 봉화를 올렸다.

기원전 771년 견융족이 주나라를 침입하여 주유왕 백복 포사 등을 살해됐고 수도 호경(鎬京)이 폐허가 되어 주나라도 멸망했다. 제후들이 낙읍(洛邑)에서 폐태자 의구를 주평왕으로 옹립하여 주나라를 재건했다.

주나라는 서쪽 호경(鎬京)이 수도일 때를 서주(西周)라고 하고 동쪽 낙읍(洛邑)이 수도를 때를 동주(東周)라고 한다. 주평왕은 주나라의 13대 왕이자 동주의 첫 번째 왕으로 견융족의 침입으로 수도를 천도하여 51년 동안 재위했다.

주환왕은 주나라의 14대 왕이자 동주의 두 번째 왕으로 제후국인 정나라를 침략하다가 실패하고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주난왕은 주나라의 37대 왕이자 동주의 스물두 번째 왕으로 기원전 256년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진(秦) 나라의 진양공(秦襄公)은 주평왕이 수도를 천도할 때 주평왕을 호위하여 정식으로 제후국이 되어 초대 군주가 되었.다 진나라는 법가인 상앙을 등용하여 춘추시대에는 춘추오패가 되었고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이 되었다.

 

◆유학특집9. 춘추전국시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時代)는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이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가 서쪽 호경(鎬京)에서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할 때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549년의 시기를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는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 시기이다. 주나라가 견융족에게 쫓겨 동쪽 낙읍으로 천도하여 왕실의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천여 개의 제후국이 10여 개의 제후국으로 줄어들어 패권을 다투던 시기이다.

춘추시대는 공자가 노(魯) 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편년체 역사서 춘추(春秋)의 이름에서 따왔다. 노나라는 주나라를 건국한 주무왕이 동생인 주공 단에게 산둥성 지역에 분봉한 제후국이며 초(楚) 나라에 멸망했다. 노나라는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이 명목상 권위를 유지했고 제후국은 존왕양이를 주창했다. 제(齊)의 환공, 진(晉)의 문공, 초(齊)의 장왕, 오(吳)의 합려, 월(越)의 구천 등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한다.

춘추5패의 하나인 진(晉) 나라는 기원전 453년 조(趙) 위(魏) 한(韓) 3성씨가 나라를 3분했다. 진(晉) 나라는 주무왕의 아들이자 주성왕의 동생인 당숙우(唐叔虞)가 분봉 받은 제후국이다 진(晉) 나라의 분열을 기준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한다.

진(秦) 나라는 주나라가 서쪽 호경(鎬京)에서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할 때 주평왕을 호위하여 제후국이 되었다. 법가인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전국칠웅으로 부상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는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시기이다. 전국시대에는 조(趙) 위(魏) 한(韓)과 더불어 진(秦) 제(齊) 초(楚) 연(燕) 등을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한다. 전국시대의 혼란은 진(秦) 나라가 최초로 통일을 달성하여 마감했다.

전국시대는 전한의 역사학자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했다. 유향은 외척과 환관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두 차례나 투옥됐고 전국책과 열녀전을 남겼다. 전국책은 전국시대에 활동한 유세가들의 일화와 언행을 모아 엮은 책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제자백가(諸子百家)가 꽃을 피웠다 제자백가로는 유가의 공자 순자, 도가의 노자 장자, 묵가의 묵자 거자, 법가의 상앙 한비자, 명가의 혜시 공손룡, 잡가의 여불위 유안 등이 대표적이다.

 

◆유학특집10. 제자백가와 유학

주(周) 나라가 견융족의 침입을 받아 수도를 동쪽 낙읍으로 천도하여 왕실의 권위가 추락했다. 수도 천도 이전을 서주(西周)라고 하고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한다. 동주를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 時代)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약육강식의 시대이며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유능한 인재 등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가(儒家),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등 제자백가가 꽃을 피웠다.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는 약 300년 동안에 나타난 여러 학자와 수많은 학파를 말한다. 학자를 제자(諸子)라고 하며 학파를 백가(百家)라고 한다.

진나라는 법가사상을 기초로 부국강병을 일궈내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진시황제는 정치적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의약 점복 농업에 관한 책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생매장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자행했다.

한고조 유방은 살(殺) 상(傷) 도(盗) 세 가지 죄만 정한 법삼장(法三章)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고 분서갱유로 소실된 유교 경전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훈고학(訓詁學)이 발전했다. 한무제(漢武帝)는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로 유학(儒學을 국교로 삼았다.

유학(儒學)은 춘추전국시대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전국시대 맹자를 중심으로 하여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내성파(內省派)와 순자를 중심으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는 숭례파(崇禮派)로 발전했다.

 

유학은 한나라 때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상실된 경전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훈고학(訓詁學)이 발전했고 당나라 때 역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 등 5경의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경학(經學)이 발전했다.

송나라 때 유학을 재해석하여 이론과 명분론에 기초한 성리학(性理學)이 성립했다. 성리학의 성립으로 공자의 논어, 증자의 대학, 자사의 중용, 맹자의 맹자 등 4서가 성립됐다. 명나라 때 양명학이 성립됐고 청나라 때 고증학이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