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배신자와 킹메이커 사이에서 극단적인 평가 받아 범웅 ‘신숙주’는 전남 나주 노안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초시와 복시에 장원을 하였고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벼슬을 시작했다.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하여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세종이 지나가다 어의를 벗어 덮어주었다고 전한다. 신숙주는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 위구르어, 아랍어, 오키나아어, 이두 등 8개 국어에 능통하여 왜국에 서장관으로 다녀왔다.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자에 앞장섰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편찬했다. 세종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에게 왕세자 ‘문종’과 왕세손 ‘단종’의 앞날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했다. 신숙주는 문종이 즉위하자 양녕대군을 탄핵했고, 직제학과 부제학이 되었고 세종실록을 편찬했다.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측근이 되었다. 나주출신 신숙주, 8개 국어에 능통했고 6명 임금을 섬겼고 4번 공신에 책록 문종이 요절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와 황보 인이 권력을 독점했다. 정인지, 성삼문, 신수주 등 집현전 학자들이 수양대군과 결합하여 공격하자 김종서와 황보 인은 안평대군과 연계하여 대응했다
광주광역시 "광주김치 제공하는 음식점에 구입비 50% 지원" - 광주시, 외식업체 30곳 선정해 최대 170만원 제공 - 한국외식업중앙회 광주시지회와 상생협력 업무협약 체결 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와 한국외식업중앙회 광주광역시지회는 18일 '광주시 김치산업과 외식산업의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주재희 광주시 경제창업국장, 김상재 ㈔한국외식업중앙회 광주광역시지회장과 5개 자치구지부 임원, ㈜해담촌, ㈜김치타운, ㈜채자연, ㈜진선 등 광주김치 제조업체 4곳의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광주 김치산업 발전과 외식산업 활성화 적극 협력 ▲광주김치 소비 확대를 위한 외식업소 지원 ▲안전한 먹거리 제공과 외식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 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중국산 김치에 대한 위생문제가 대두됐지만, 우리나라 김치 수입량 중 중국산 비중은 여전히 99.9%를 차지하고 있다. 광주시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시민 요구에 부응해 수입산 김치보다 3배 이상 비싼 국산김치를 사용하는 외식업소 부담을 경감하고, 광주김치산업 판로 확대를 위해 지역 외식업소에 광주김치 구입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2025년까
일제 강점기 호남 최고의 갑부 ‘현준호’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침계리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 금융인이자 기업인이다. 현준호의 아버지인 학파(鶴坡) 현기봉(玄基奉)은 신흥제철소를 설립했고, 광주농공은행 이사, 일청생명보험회사 상의원 등을 지내며 일제에 저극 협력하여 조선총독부 참의를 지낸 대표적인 친일 정치인이자 기업가이며 호남에서 소문난 갑부였다. 현준호는 담양의 창평영학숙과 휘문의숙에서 공부했다. 일본 메이지대학을 유학하여 김성수, 송진우 등과 지속적으로 교유했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호남은행을 설립하여 대표가 되었다. 조선생명보험 감사, 동아고무의 주주, 영암운수 전무, 도시제사공장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한 동아일보 감사, 보성전문학교 감사를 역임했고 광주공립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다. 한편 조선민립대학(현 조선대)과 광주의학전문학교(현 전남의대)에 많은 자금을 후원했다. 현준호는 1924년 전라남도 평의원에 올랐으며, 193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어 해방 때까지 중임했다. 중추원은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관이며 일제의 조선통치에 도움이 된 자 또는 공로가 있는 자, 그리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온 자들을 참의로
몽골 특집9~10. 몽골공화국과 내몽골자치구 몽골 특집9. 몽골공화국 1206년 칭기스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했고 1271년 쿠발라이칸이 원나라를 건설하여 남송을 정복하여 최초로 이민족이 대륙을 통일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1368년 명나라에 의해 몽골고원으로 쫓겨났다 청나라에 의해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열됐다. 1911년 신해혁명 직후 1차 혁명을 일으켜서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중화민국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1921년 러시아혁명 직후 2차 혁명을 일으켜서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했다. 1991년 민주화 혁명을 일으켜서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계획경제 체제를 폐기하고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몽골은 동아시아의 내륙국으로 면적은 세계 18위로 남한의 15배이며 인구는 340만 명으로 부산과 비슷하며 세계에서 인구밀도 가장 낮다 공용어는 몽골어이며 키릴문자를 사용한다. 몽골은 중국 자치구인 내몽골과 몽골국인 외몽골로 구분한다. 외몽골의 동쪽은 헹티산맥, 서쪽은 알타이산맥, 남쪽은 고비사막, 북쪽은 타이가 슾지이다. 몽골인 중에서 외몽골보다 내몽골에서 사는 인구가 많다. 옵
전북 완주군, 아동·청소년이 4차 산업혁명 기술 활용 지역문제 해결 전북 완주군(유희태 군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아동·청소년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16일 완주군에 따르면 군은 지난 12일 우석대학교에서 전국최초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완주군 아동·청소년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 발대식을 열었다. 이번 사업은 아동·청소년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디지털, 과학기술을 배우고, 리빙랩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해보는 참여형 프로젝트 사업이다. 완주군은 지난 7월에 전북도 내 청소년참가팀을 모집했으며, 총 10팀이 지원해 6팀을 선발했다. 한별고(김유진 외 2명)팀은 챗봇개발을 통해 (자살·우울증) 위기청소년을 지원하고, 용진중(한세이 외 4명)팀은 디지털 휴먼과 Voice AI를 활용한 상담앱 개발을, 삼우중(이세아 외 4명)팀은 학교 화재시스템 분석 및 화재도우미 개발을 제안했다. 또한 소양중(이혜서 외 2명)팀은 소양면 이동권 분석 및 이동권 지원 프로그램 개발, 전주 상산고(남윤건 외 2명)팀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한 아동 주거환경 개선, 전주 서신중(이지안 외 2명)팀은 다문화 학생·가족을 위한 서비스 지도 제작에 나선다. 청
명품 ‘해남고구마’ 본격 수확 및 판매 전 국민이 사랑하는 영양 간식, 해남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해남은 연간 3만 6,000여톤의 고구마를 생산하는 최대 고구마 주산지로, 550여 농가에서 2,200여㏊를 재배하고 있다. 올해는 긴 장마로 수확이 다소 늦어진 편으로, 8월 초부터 밤고구마인 진율미 품종이 주로 출하되고 있다. 해남고구마는 시기별로 밤고구마와 꿀고구마, 호박고구마 수확이 11월까지 이어진다.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황토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해남고구마는 지리적 표시농산물 42호로 등록돼 최고 품질의 고구마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고구마는 당도가 높고 식이섬유와 무기질, 면역력을 높여주는 영양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인기 농산물이다. 이제는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시대로 건강식품 중에서도 고구마의 위력은 대단하다. 특히 황토에서 생산되고 있는 고구마는 해남의 특산물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영양분뿐만 아니라 당도 또한 국내에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맛을 지닌다.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고구마의 약 25%가 전라남도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양이 이 곳 해남에서 수확되고 있다
몽골 특집7. 원나라의 쇠퇴 북원(北元)은 1368년 몽골제국 17대 황제이자 원나라 13대 황제이며 북원의 초대 황제인 혜종이 명나라 주원장에게 쫓겨나서 만리장성 북쪽의 몽골초원에서 재건한 나라이다. 혜종은 오이라트에 살해됐고 기황후는 행방은 알 수 없다. 북원의 2대 소종은 원나라 14대 황제이며 혜종과 기황후의 아들이다. 소종은 명나라군의 다시 외몽골로 쫓겨났다 기황후는 고려인 공녀로 혜종의 궁녀에서 황후가 되어 소종을 낳았다. 북원의 3대 평제는 원나라 15대 황제이며 혜종의 아들이자 소종의 이복동생으로 1635년 조리그투칸과 오이라트에 살해됐다. 북원의 장수들이 명나라에 투항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원나라가 몽골초원으로 쫓기 나자 조리그투칸이 몽골제국 18대 대칸으로 즉위하여 국호 대원(大元)을 폐지했다. 몽골제국 마지막 황제인 39대 링단칸이 티베트로 가려던 중 급사했다. 1634년 황족들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하여 멸망했다. 모굴리스탄칸국은 1347년 차가타이칸국에서 독립하여 1706년까지 중앙아시아 동부에 성립된 몽골계 국가이다. 모굴인이 중심이 되어 모굴칸국이라 한다. 오이라트 출신의 인류 역사 최후의 유목제국인 준가르에 멸망했다. 오
전라도는 '주홍글씨' 영화 주홍글씨는 ‘두번의 살인 세가지 사랑 그리고 네개의 결말’ 이라는 카피가 말해주듯 사랑과 살인 알 수 없는 결말을 예고한다. 살인사건이 나자 강력계 형사(한석규)는 순종적 아내(엄지원)와 팜므파탈 애인(이은주)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의 실마리를 풀려한다. 부인이 임신을 하자 애인과 이별을 하려 하지만 어긋난 사랑은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형사의 아내와 형사의 애인은 서로 동성 연애를 했다. 그녀는 다른 그녀를 붙잡기 위해 그녀의 애인과 결혼을 한다 결국 어긋난 사랑은 그 사랑에 주홍글씨를 선택한다. 주홍글씨는 영화 드라마 그리고 책으로 다양하게 우리에게 전해졌다. 본래 주홍글씨란 '영국 청교도가 간통한 여자에게 adultery의 첫자 A를 가슴에 주홍색으로 새겼던 것이다'고 한다. 전라도 땅은 삼한시대엔 마한 땅이고 삼국시대엔 백제 땅이다. 고려시대에 전주목과 나주목을 설치했고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 라 했다. '무진주' 광주는 1896년 전남과 전북이 나뉘면서 전남 도청이 되었고 1986년 독립 하였고 2005년 전남 도청이 남악으로 떠났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를 통해 ‘호남인은 벼슬을 주지 마라’고 했
(인물탐구) 참 스승, 송기숙 교수 민중문학의 개척자, 살아있는 양심으로 존경받아 송기숙은 전남 장흥 출신의 소설가이자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문학평론 ‘이상서설(李箱序說)’이 추천되었다. 단편집 ‘백의민족’,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 ‘녹두장군’, ‘암태도’ 등을 발표했다. 1978년 6월 27일 송기숙 등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은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문을 발표했고 6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지지 시위를 벌였다. 선언문은 유신 정권의 교육 이데올로기였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고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참여 교수 11명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대학생 30 여 명은 구속, 제적, 정학을 당했다. 송기숙은 4년형을 선고받고 1년 1개월을 복역했다가 제헌절 특사로 석방되었고 1984년 전남대학교에 복직되었다.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교육민주화 선언으로 옥고와 해직까지 2013년 3월 29일 송기숙 등 8명은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치매를 앓고 있던 송기숙은 35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광주지법 형사12부 신현범 부장판사는 “무죄판결을 이제야 한다는 것이
몽골 특집5~6. 몽골제국의 분열과 원나라 몽골 특집5. 몽골제국의 분열 차가타이칸국은 1226년 칭기즈칸이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칭기즈칸으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을 분봉 받아 수립됐다. 4대 몽케칸이 사망하자 아리크부케에 반기를 들고 오고타이칸국과 대립했다. 카이두가 원나라와 연합하여 오고타이칸국을 정복했다. 10대 두아칸이 오고타이칸국을 정복했다. 차가타이칸국은 유목민과 정주민의 분열로 동차가타이칸국과 서차가타이칸국으로 양분됐다. 서차가타이칸국을 티무르왕조가 장악했다. 티무르왕조가 멸망하자 모굴리스탄칸국이 계승했다. 오고타이칸국은 칭기즈칸이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칭기즈칸으로부터 서몽골 지역을 분봉 받아 수립됐다. 초대 오고타이칸을 대신하여 오고타이칸의 황후가 섭정했다. 2대 귀위크칸을 대신하여 황후가 섭정했다. 3대 카이두는 오고타이의 손자로 1271년부터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아리크부케의 계승자를 선언하며 원나라 쿠빌라이칸과 내전을 벌였다. 6대 차파르칸은 차가타이칸국과 교전에서 패배하고 원나라로 망명했다. 킵차크칸국은 칭기즈칸이 첫째 아들 주치의 아들인 바투가 오고타이칸이 사망하자 남러시아에서 수립했다 바투칸이 몽케칸을 추대한 공로로 자치권을 승인받았다
촌캉스 여행, '익산 농촌체험휴양마을' 인기 자연을 느끼고 농촌체험과 휴식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익산 농촌체험마을이 촌캉스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익산시청 제공] 시는 농촌생활 콘텐츠와 편의시설을 확충해 가족 중심의 개별여행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500만 관광객 유치에 나선 익산시는 지역의 농촌체험휴양마을 10곳을 중심으로 자연경관과 농촌체험을 활용한 힐링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산들강웅포마을과 성당포구마을, 용머리고을, 두동편백마을 등 금강지역에 분포돼 있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는 자연 속 생태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두동편백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조성한 편백나무숲에서 즐기는 피톤치드 산림욕과 자연과 함께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숲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편백나무와 주변 경관이 조화를 이뤄 휴식공간으로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전북 숲세권 9선에 선정된 곳이다. 이와 함께 고구마 등 각종 농산물 수확뿐 아니라 피톤치드를 활용해 입욕제를 만드는 체험까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산들강웅포마을에서는 농촌 생활부터 자연생태체험까지 자연 속에서 즐기는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웅포 특산물인 블루베리를 활용한 호떡과 영양 주
서울 강북구, 이준 열사 추모특별전…'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 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를 맞아 지난 8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추모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준 열사는 일제의 사법권 침탈에 맞서 싸우다 해임된 대한제국 1세대 검사이자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애국계몽운동가다. 고종의 특사로 임명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폭로하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열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사회 여론에 호소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순국하고 말았다. 이준 열사의 성체(聖體)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63년 9월 30일 환국했고, 10월 4일 강북구 수유리에 안장됐다. 이번 추모특별전은 ▲법무대신을 고소한 호법신護法神 검사 ▲일제 침탈에 맞선 국권수호운동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돌아오지 못한 특사의 귀환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에서는 이준 열사의 검사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성재판소 검사 시보 임관안,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교재 등 다양한 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