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뉴스 정길훈 기자 | 김희정 박사 부부클리닉 제3탄 “대화 소통의 기술” <기 고 문>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박사 / 소장] 아내는 남편을 만나 알게 된지는 한 5, 6년 되었다. 먼 거리를 마다하고 연애 감정을 키워오다 결혼한지는 1년이 되었다. 남편과 동거 포함 횟수로는 약 3년 정도 되었고, 실제 부부처럼 결혼 생활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1.5년이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현재까지도 직장 문제로 각자 떨어져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지방에서 친정어머니를 도와 자영업을 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남편 홀로 살고 있는 신혼집인 서울로 와서 2주 정도 머물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신혼집에서 남편과 생활할 때 아내가 느끼는 감정이 문제였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하였다. 「남편과 아내는 바다로 향하였다. 항해사의 역할을 남편에게 맡기고 바다에 배를 띄워 가는데 항해사로서의 기본을 남편이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항해사이기에 바다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태풍불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중소벤처뉴스 신병철 기자 | <기고문>전진숙 빛고을비전창작소 이사장 "윤석열 정부 매국행위”라 강하게 비판하였다. 전진숙 빛고을비전창작소 이사장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사태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매국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빛고을비전창작소 전진숙 이사장] 이번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행위로 인하여 대한민국 800만자영업자 다 죽는다. 정부는 지원대책 당장 마련해야한다라고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수산업계와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현실화하였다며, 전진숙 빛고을비전창작소 이사장은 “이번 핵 오염수 방류 사태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을 버리고 일본과 손잡은 매국적인 행위”라고 규탄한다고 하면서 정부가 누구를 위하는 정부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우리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이번 사태를 동조하는 것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하여 건국이래 최악의 상황을 3년이라 세월을 버티고,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정부가 자국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도 않음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전진숙 이사장은 “일본 기시다 정부가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한국
한국 다도를 정립한 다성(茶聖), 초의선사 장의순 장의순은 1786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해 19세에 해남 대흥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대흥사 뒷산에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년 동안 차와 더불어 살다가 1866년 81세로 입적했다. 장의순은 대흥사 완호(玩虎) 스님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법호 초의(草衣)와 법명 의순(意恂)을 받았다. 서산대사는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고 하며 조선 중기에 불교의 중흥을 이끌었다. 초의선사는 ‘깨달으면 교(敎)가 선(禪)이 되고 미흡(未洽)하면 선(禪)이 교(敎)가 된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 불교의 선풍을 일으켰다. 다도(茶道)는 중국의 육우(陸羽)가 8세기 중엽에 지은 ‘다경’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와 함께 다도가 신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고려시대에는 사찰과 귀족 중심으로 번성했다가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쇠퇴하여 명맥만 유지되었다. 19세기 초에 초의선사가 다도의 이론과 실제를 ‘동다송(東茶頌)’으로 정리함으로써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 다도를 중흥시켰다. 이는 초의선사를 다성(茶聖)으로 추앙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의선사는 ‘만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일본땅에 보관하는 것이 타당하다. 간토 지방은 도쿄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 등 1도 6현을 말한다. 긴키 지방은 교토부 오사카부의 2부와 시가현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 미에현의 5현을 말한다. 간토 지방과 긴키 지방은 일본의 중심을 이룬다. 도호쿠 지방은 혼슈 동북에 있는 지방으로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 등 6현을 말한다.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 지방을 북일본이라고 한다. 세이칸터널과 신칸센터널을 통해 혼슈와 홋카이도가 연결됐다. 도호쿠 지방 북부의 기타토호쿠(北東北)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아키타현의 3현을 말한다. 도호쿠 지방 남부의 미나미토호(南東北)는 미야기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의 3현을 말한다. 후쿠시마현은 도호쿠 지방 남쪽의 태평양에 면한 현으로 현청 소재지는 후쿠시마시이다. 평야가 많고 땅이 비옥해서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며 지진이 가장 잦은 지역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여 재앙이 되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는 1966년 착공하여 1971년 운행했다.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는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11.5km 떨어진 곳에 1
중소벤처뉴스 정길훈 기자 | 김희정 박사 부부 클리닉 제2탄 “마음의 문이 열리면, 감각의 문도 열린다.” <기 고 문>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아내는 배우자인 남편이 자신과 대화하려 하지 않고 피하며 그 어떠한 것도 공유하려 하지 않아 힘들다고 하였다. 이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부터 부부관계에서 불거져 나왔고 남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이때부터 이혼 이야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못 살겠다는 말이 아내에게서 나왔을 때, 남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알고 검색을 통하여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에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하였다. 남편인 철수(가명) 씨는 처음 상담에 임할 때 자신이 ‘바뀔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지만, 아내에게 ‘이혼하자’라는 말을 왜 들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문제가 문제인지? 자신이 모르는 자신만의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있다.’라고 한다면 자신은 꼭 고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고 하였다. 철수 씨는 상담을 받는 과정에 법원에 협의이혼 서류를 접수하였고, 무자녀였기에 한 달간의 숙려기간에 있었다. 철수 씨는 처음
일제 강점기 호남 최고의 갑부 ‘현준호’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침계리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 금융인이자 기업인이다. 현준호의 아버지인 학파(鶴坡) 현기봉(玄基奉)은 신흥제철소를 설립했고, 광주농공은행 이사, 일청생명보험회사 상의원 등을 지내며 일제에 저극 협력하여 조선총독부 참의를 지낸 대표적인 친일 정치인이자 기업가이며 호남에서 소문난 갑부였다. 현준호는 담양의 창평영학숙과 휘문의숙에서 공부했다. 일본 메이지대학을 유학하여 김성수, 송진우 등과 지속적으로 교유했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호남은행을 설립하여 대표가 되었다. 조선생명보험 감사, 동아고무의 주주, 영암운수 전무, 도시제사공장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한 동아일보 감사, 보성전문학교 감사를 역임했고 광주공립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다. 한편 조선민립대학(현 조선대)과 광주의학전문학교(현 전남의대)에 많은 자금을 후원했다. 현준호는 1924년 전라남도 평의원에 올랐으며, 193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어 해방 때까지 중임했다. 중추원은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관이며 일제의 조선통치에 도움이 된 자 또는 공로가 있는 자, 그리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온 자들을 참의로
전라도는 '주홍글씨' 영화 주홍글씨는 ‘두번의 살인 세가지 사랑 그리고 네개의 결말’ 이라는 카피가 말해주듯 사랑과 살인 알 수 없는 결말을 예고한다. 살인사건이 나자 강력계 형사(한석규)는 순종적 아내(엄지원)와 팜므파탈 애인(이은주)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의 실마리를 풀려한다. 부인이 임신을 하자 애인과 이별을 하려 하지만 어긋난 사랑은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형사의 아내와 형사의 애인은 서로 동성 연애를 했다. 그녀는 다른 그녀를 붙잡기 위해 그녀의 애인과 결혼을 한다 결국 어긋난 사랑은 그 사랑에 주홍글씨를 선택한다. 주홍글씨는 영화 드라마 그리고 책으로 다양하게 우리에게 전해졌다. 본래 주홍글씨란 '영국 청교도가 간통한 여자에게 adultery의 첫자 A를 가슴에 주홍색으로 새겼던 것이다'고 한다. 전라도 땅은 삼한시대엔 마한 땅이고 삼국시대엔 백제 땅이다. 고려시대에 전주목과 나주목을 설치했고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 라 했다. '무진주' 광주는 1896년 전남과 전북이 나뉘면서 전남 도청이 되었고 1986년 독립 하였고 2005년 전남 도청이 남악으로 떠났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를 통해 ‘호남인은 벼슬을 주지 마라’고 했
시사톡(talk) 엉망진창,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세계 잼버리(World Jamboree)란?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서 매 4년마다 개최하는 전 ‘세계적인 청소년 야영대회’이다. 1920년 영국의 런던 올림피아에서 포우엘경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민족, 문화,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하여 국제 이해와 우애를 다지는 보이스카우트의 세계야영대회로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벌에서 1991년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91년 제17회 강원도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세계는 하나(Many Lands, One World)’라는 주제 아래 세계잼버리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나라(135개국, 19,083명)가 참가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특히 동구권에서 12개국이 참가하여 세계 청소년들의 화합과 단결의 장이 되었으며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설악의 수려한 산림에 둘러쌓인 신평벌은 외국 대원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역대 대회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고 빼어난 대회장으로 찬사를 받았다. 국가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열렸던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국내외적으로도 성공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
중소벤처뉴스 정길훈 기자 | 김희정 박사 부부클리닉 제1탄 "부부관계의 비밀" <기 고 문>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협의 이혼을 신청하고 숙려기간 중 상담을 신청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크나 큰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협의이혼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아내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 엄마가 왜 이혼하였는지 당당하게 이야기하여 줄 것이라 하였다. 그때 “그래도 엄마는 이혼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상담은 받는 것이라 하였다.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너무나 담담한 아내와 상반되게 위축되어있는 남편 모습의 이미지는 내게는 강렬하였다.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에게 가장 고마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짧고 굵게 한마디 하였다. “무관심요.” 다시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으로부터 가장 힘든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는 다시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이러니하게도 대답은 한가지였다. “무관심요.” “남편에게 고마운 것도, 남편에게 서운하고
◆ 夏(하)나라 걸왕(桀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루었다. 향락이 극에 달한 방탕한 생활을 이르는 말. 夏(하)나라는 중국에서 기원전 2700년 경부터 기원전 1600년 경까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전설상의 나라이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우임금이 선양을 받아 건국했고, 마지막 군주 걸왕이 말희(末喜)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기다가 商(상)나라 탕왕에게 멸망했다. 주지육림은 걸왕이 말희와 함께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 무렵 인공으로 만든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못에는 술이 가득했고, 그 둘레에는 고기는 산처럼 쌓이고, 포는 숲처럼 걸려 있었으며,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었고, 수백의 미소년 소녀들과 발가벗고 그 사이를 서로 쫓고 쫓기고 하며, 밤낮 없이 계속 술을 퍼 마시고 즐겼다’라고 사마천은 사기에 걸왕과 말희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을 기록했다. 暴君(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桀紂(걸주)의 淫亂無道(음란무도)한 생활을 표현하는 말이 주지육림이다. 桀(걸)은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고, 紂(주)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 商(상)나라 주왕(紂王)의 포락지형(炮烙之刑) ‘굽고 지지는 형
이낙연은 自省이 먼저다! 광주는 민주주의 성지, 정의의 도시, 평화의 도시, 인권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하여 이곳에 사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상 수 칼럼리스트] 그런데 이 고장 출신인 이낙연 대표의 행보를 보면 동향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가 그동안 지역민이나 국민들께 큰 기여는 하지 못했을 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지역과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의 뒤처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낙연 인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공인으로서 활동을 한 국회의원시절, 전라남도 도지사 시절과 국무총리 시절, 그리고 민주당 당대표 시절 그가 무엇을 이뤄낸 일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뒷마무리를 어떻게 해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대부분 기존 신문에 게재된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형식을 유지하려고 한다. 먼저 이낙연은 국회의원 시절(2000.04.07~2014.05.15)에는 특별한 업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낙연은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안이 나왔을 때 노무현대통령 탄핵을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관심이 있었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안에 가결에 찬성했나 반대했냐